[안경남의 풋볼뷰] 레스터시티 4-4-2는 특별하다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영국의 축구전술전문가 조나단 윌슨(Jonathan Wilson)은 2000년대 초반부터 4-4-2 포메이션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례가 바로 1999년 트레블을 달성한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당시 퍼거슨은 잉글랜드 최초로 한 시즌 3개의 메이저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음에도 이듬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2-3으로 패하자 더 이상 4-4-2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후 전통적인 스탠딩 윙어인 데이비드 베컴과 작별한 맨유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를로스 테베스, 웨인 루니, 박지성 등 다재다능한 움직임을 지닌 선수들을 바탕으로 4-2-3-1 혹은 4-3-3으로 그들의 작전을 변경했다. 그리고 맨유는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2시즌을 보냈다.

동시에 첼시 지휘봉을 잡은 주제 무리뉴의 등장은 3열 포메이션(ex4-4-2)의 약점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부임 초기 첼시에서 클로드 마켈렐레를 후방에 둔 4-3-3을 사용한 무리뉴는 4-4-2를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4-4-2와 4-3-3이 대결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중앙 미드필더 지역에서 4-4-2의 ‘2명’와 4-3-3의 ‘3명’이 붙는다. 윌슨은 이에 대해 “두 팀의 기량이 비슷하다면 4-3-3이 점유율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둘째는, 4-3-3에선 측면 윙어들이 풀백을 가까운 위치에서 압박 혹은 견제를 할 수 있다. 하지만 4-4-2의 좌우 미드필더는 4-3-3의 풀백과 거리가 멀다. 4-3-3 풀백의 경우 같은 4-3-3과 붙었을 때보다 앞으로 전진하기가 쉽다. 4-3-3과 4-2-3-1이 유행하면서 마이콘, 다니 알베스, 애슐리 콜 등 공격적인 풀백이 각광을 받은 이유다. 그리고 이들을 막기 위해 ‘수비형 윙어’ 박지성이 등장하기도 했다.

::4-4-2는 아리고 사키에 의해 시작됐다

4-4-2 포메이션이 누구에 의해 최초로 시작됐는지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4명의 수비수와 4명의 미드필더 그리고 2명의 공격수를 3줄로 나열한 4-4-2를 발명한 인물은 80년대말 AC밀란을 이끌었던 아리고 사키로 알려져 있다. 3-5-2와 4-3-3이 유행하던 당시 사키는 압박(pressing) 축구를 구현하기 위해 4-4-2를 선택했다. 사키가 4-4-2 포메이션을 사용한 이유는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 10명을 경기장에 골고루 배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의 압박을 강조했다. 4-4-2는 그의 철학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도구였다. 또 하나 사키는 팀이 공의 소유권을 잃었을 때 최전방 포워드와 최후방 센터백 사이의 간격을 25m 이내로 좁혔다. 중앙에 미드필더 숫자가 부족해도 공간을 줄여 항상 수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윌슨은 “사키에게 점유율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주 공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항상 상대보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사키의 4-4-2는 ‘점유율’보다 ‘포지션’이 앞서 있었다.

하지만 사키의 4-4-2는 말처럼 쉬운 전술이 아니다. 이전보다 느슨해진 오프사이드 룰의 완화는 높은 위치에서 압박을 시작하는 사키식 4-4-2를 점차 사라지게 했다.(참고 – 2005년 오프사이드 룰이 개정되면서 수비라인은 점차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피지컬보다 기술을 갖춘 선수들이 더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이미 정상급 실력을 갖춘 ‘스타’ 선수들에겐 상당히 지루한 과정일 수도 있다. 윌슨은 “현대축구에서 사키와 같은 4-4-2를 재현하긴 힘들다. 과거 풀럼에서 4-4-2로 성공했던 로이 호지슨도 리버풀에서 실패했다. 심지어 AC밀란도 3시즌을 넘기지 못했다”고 했다. 실제 4-4-2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도 엄청난 훈련을 소화하기로 유명하다. 김학범 성남FC 감독은 “아틀레티코 훈련 과정을 현지에서 본 적이 있다. 훈련할 때 그들은 그라운드를 세분화해 각 영역을 숫자로 표시한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서 팀 전체가 움직이는 훈련을 반복한다. 쉬운 것 같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한 훈련이다. 또 체력도 뒷받침이 돼야 한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했다.

::라니에리는 4-4-2를 재탄생시켰다

올 시즌 레스터시티의 성공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존에 힘들다고 여겨졌던 일종의 공식들이 모조리 깨졌기 때문이다. 레스터시티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전술 단어는 ‘역습’과 ‘압박’ 그리고 ’4-4-2’다. 이탈리아 출신의 라니에리는 사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 복제에 그치지 않고 단점까지 극복하며 현대축구에 맞는 전술로 재탄생 시켰다. 라니에리 4-4-2는 오프사이드 룰 개정에 맞게 수비라인을 과거 사키의 AC밀란처럼 전진시키지 않는다. 로베르트 후스와 웨스 모건의 느린 발과 낮은 패스성공률을 감안한 조치다. 점유율도 마찬가지다. 아틀레티코의 경우 강팀과의 경기를 제외하면 평균 50%의 점유율을 보여준다. 하지만 레스터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50% 이하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일부러 공의 소유권을 상대에게 내주진 않지만 전체적인 라인을 뒤로 물리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상황이 더 많다.

::레스터는 ‘실수’가 가장 적은 팀이다

그런 측면에서 레스터는 공이 없을 때 플레이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팀 중 하나다. 이는 효율성과도 연관이 있다. 레스터는 올 시즌 점유율과 패스성공률에서 리그 하위권을 기록 중이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축구를 “실수의 스포츠”라고 했다. 레스터는 바로 이 ‘실수’가 적다. 축구통계전문사이트 옵타(Opta)의 데이터 분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레스터는 ‘실점’으로 이어지는 ‘실수’가 가장 적은 팀이었다. 또 하나 레스터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상대 실수를 이용해 골까지 만드는 작업이다. 은골로 캉테와 다니엘 드링크워터를 4-4-2 포메이션의 가운데 ‘4’의 중앙에 배치한 레스터는 EPL에서 가장 많은 가로채기를 성공했다. 이는 곧바로 레스터의 득점으로 이어진다. 순간적으로 공간을 지우는 압박으로 공을 탈취한 뒤 복잡한 패스를 생략하고 빠르게 제이미 바디와 리야드 마레즈가 서 있는 전방으로 공을 전달한다. 그리고 바디는 ‘스피드’로, 마레즈는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파괴했다.

이는 분명 기존의 팀들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4-4-2가 힘을 잃고 4-3-3(혹은 4-2-3-1)이 대세가 되면서 ‘점유율’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팀들이 리그를 지배했다. 하지만 레스터는 점유율을 포기하고 공이 없을 때 승리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어쩌면 이것이 레스터 4-4-2를 특별하게 만든 요인인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의 철학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무리뉴는 “경기에서 실수를 적게 하는 팀이 승리한다. 즉,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 실제로 실수는 공을 소유한 팀이 저지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그렇다. 올 시즌 라니에리의 레스터가 바로 이것을 증명해냈다.

[그래픽 = 안경남 knan0422@mydaily.co.kr/ 사진 = AFPBBNEWS]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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