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결혼계약' 이서진·유이…의심했다 하지만 울었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MBC 주말드라마 '결혼계약'(극본 정유경 연출 김진민)이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눈물을 안기며 24일 16부로 종영했다.

예상을 깬 드라마였다. 애당초 '결혼계약'은 기대가 큰 드라마가 아니었다. 후속작 '옥중화'(극본 최완규 연출 이병훈 최정규) 편성이 예정보다 늦춰지며 긴급하게 편성된 작품이었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었다. 재벌 2세 남주인공과 가난한 여주인공의 사랑은 한국드라마의 전형적인 소재였다. 시한부 인생의 여주인공이 남겨질 아이를 위해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설정은 배우 송윤아 주연의 MBC '마마'에서 이미 시청자들에게 선보인 내용이었다.

'결혼계약'만의 특색인 간 이식 수술을 위한 계약 결혼이란 설정도 지난 2010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해 인기였던 '유성'의 핵심 설정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성공했다. 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자체 최고 시청률 22.9%였다. 동시간대 전작들 중 '내 딸, 금사월'보다는 낮았으나 '여왕의 꽃'보다는 높았으며, 특히 '마마'보다도 좋은 성적이었다.

더 의미 있었던 건, 시청률 수치가 아닌 시청자들의 호평이었다. 상투적인 이야기였음에도 시청자들에게 '막장 드라마'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과 삼각관계 일색인 로맨스 드라마에는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가치를 되새겼다.

익숙한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건, 가장 행복한 순간에 가장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다는 '아이러니 구도'의 효과가 절묘하게 발현된 덕분이었다.

연출의 감각적 편집의 힘도 컸다. 14회 마지막 장면에서 회사를 뛰쳐나온 한지훈(이서진)이 꽃을 들고 강혜수(유이)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뛰어가 혜수의 딸 은성(신린아)까지 셋이 끌어안고 순수한 얼굴로 행복해 하는 장면은 이들 앞에 기다리고 있을 슬픈 운명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며 '아이러니 구도'의 절정을 보여줬다.

배우 이서진과 걸그룹 애프터스쿨 멤버인 가수 겸 배우 유이의 연기 호흡은 '결혼계약' 인기의 일등공신이자, 대중의 예측이 가장 크게 빗나간 지점이었다.

실제로 17세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방영 전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극 초반 이서진의 경우에는 연기가 케이블채널 tvN '삼시세끼' 등에서 보여준 예능 캐릭터가 연상된다는 지적을 받았고, 유이는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연기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두 배우가 붙자 절묘한 화학 반응이 일어났다. 이서진 특유의 툴툴거리는 말투로 연기한 한지훈은 기존 한국드라마 속 백마 탄 재벌 2세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들었고, 유이가 준 힘은 16부 내내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도리어 강혜수의 강인한 모성애로 배어났다.

특히 유이에게선 진심이 느껴질 정도의 묵직한 장면이 여럿 있었다. 흔히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빠져버리는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된 연기와 달리 유이는 감정을 쏟아낼 때만큼은 여과 없이 온통 눈물에 흘려 보냈다. 시청자들로서는 유이가 내뿜은 절제 없는 감정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최근 유이 또래 여배우에게서 느끼기 힘들었던 생소하면서도 뜨거운 가슴의 울림을 겪었다.

그리고 지훈과 혜수는 서로에게 보완(補完)이었다. 너무 능청스럽고 마냥 철없는 가벼운 지훈과 삶의 무게를 홀로 짊어지고 웃을 일 없던 혜수, 이 두 사람이 만나자 지훈에게는 진심, 혜수에게는 웃음이 옮겨가며 서로의 모자람을 채웠고, 결코 떼어 낼 수 없는 애절한 사랑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 MBC 방송 화면-마이데일리 사진DB]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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