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된 전성기를 되찾다, 퍼퓸 ‘Cosmic Explorer’

[김성대의 음악노트]

히로시마 출신 3인조 걸그룹 퍼퓸의 통산 다섯 번째 앨범. 전작 ‘LEVEL 3’ 이후 햇수로 3년 만의 작품이다. 우선 앨범 재킷부터 이들의 최고작인 ‘Triangle(⊿)’을 생각나게 하는 아니, 그 때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확연히 느껴진다. 하우스와 테크노팝을 주무기로 하는 퍼퓸의 지배자 나카타 야스타카(프로듀서, 작곡가 겸 DJ)의 조금은 하향세였던 작, 편곡 감각이 되살아난 가운데 곡들은 저마다 개성을 뽐내며 무표정한 세 여인의 사이보그 목소리를 왜곡없이 전해준다.

건장한 미드템포 넘버 ‘Cosmic Explorer’를 지나 만나는 메르세데스 벤츠 광고 음악 ‘Next with you’는 쫄깃한 기타 리프가 마룬파이브 냄새마저 풍기며 찬란한 펑키 그루브를 뽐낸다. 물론 이 어여쁜 멜로디와 리듬 시연은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music)에 푹 담근 듯한 클럽 댄스 트랙 ‘Story’에서 전혀 다른 표정으로 듣는 이를 대하는데, 이번 앨범은 대략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정색과 화색의 반복, 대비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카타의 음악 놀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보란듯이 너른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는 것이다. 예컨대 ‘Sweet refrain’에서 ‘Dream fighter’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앨범은 충분하다. 일렉트로닉이라는 음악 장르는 분명 서양 것이지만 ‘Baby face’는 동양이라는 '지역색'과 어울리며 앨범 전체를 환기시키고, 이어지는 ‘Tokimeki Lights(‘설레는 빛’)’는 팬들이 사랑하는 퍼퓸 멜로디의 끝을 들려준다.

‘Triangle(⊿)’과 신작 사이에 있는 앨범 두 장(‘JPN’과 ‘LEVEL 3’)이 팬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나카타 야스타카의 매너리즘 때문이었다. 보컬 리듬에 진짜 ‘폴리리듬’을 녹였던 ‘Polyrhythm’으로 다프트 펑크를 탐닉했던 그가 수록곡 제목처럼 그야말로 최고(‘The best thing’)의 2집을 내놓으며 제이팝/일렉트로닉 팬들의 넋을 빼놓았던 2009년은 사실상 그와 퍼퓸의 전성기였다. 지난 5년 여는 그 전성기가 은근히 유예된 시기였고, 5집이 나온 지금 2016년은 그 유예를 다시 유예시키는 해로 어쩌면 남을 것이다. 가령 인트로 소품 ‘Navigate’가 전하는 짧지만 강렬한 낭만은 그 조용한 ‘폭풍의 눈’으로서 신작에 발 담그기 전 사람들의 오감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혹자는 국내 걸그룹들과 비교하며 이들의 외모와 가창력과 춤 실력에 의문을 품지만 퍼퓸은 어디까지나 나카타 야스타카라는 불세출의 아티스트가 지난 8년 간을 공들인 금자탑 같은 것이어서, 퍼퓸을 둘러싼 모든 논의와 지적과 의심은 결국 나카타 야스타카의 음악에서 비롯되어 그의 음악으로 수렴되어야 맞다고 나는 본다. 퍼퓸의 세 멤버들 역시 이 사실을 항상 강조하고 있는 바, 심지어 이들은 나카타가 퍼퓸의 곡을 만들지 않을 때, 그 때가 바로 퍼퓸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까지 했다. 본작 ‘Cosmic Explorer’는 그래서 퍼퓸의 생명 연장이요, 나카타가 가진 천부적 센스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작에서도 말했듯 이번 작품은 ‘Triangle(⊿)’ 이후 퍼퓸의 최고 앨범이다.

[사진제공=유니버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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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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