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 황야의 산책, 넓은목장과 중산간지대

'제주스러운' 풍경은 오름이 드문드문하고 억새가 우거진 중산간지대 황야에 있다. 그 중 '넓은목장' 일대가 가장 특별한 황야다.

외국 영화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경이 있는데, 간혹 배경으로 등장하는 끝없이 넓은 황야가 그것이다. 국토는 좁고 인구가 많은 이 땅에는 개간하지 않고 방치한 들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도에는 소나 말의 방목을 위한 목초지로 쓰거나 개간하기에는 땅이 너무 척박해서 버려둔 황야가 꽤 남아있다. 빈틈없이 짜인 육지에서 숨 막혔던 몸은 이제 제주의 황야에서 간만의 자유와 해방감을 맛본다.

재주도의 황야는 오름지대로 유명한 구좌읍과 표선면 사이 해발 200미터 전후 중산간지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성읍민속마을에서 북쪽으로 백약이 ~동거문오름 사이 들판이 특히 넓고 마을도 없어서 자연스러운 황야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 이 들판의 서쪽 부분인 개오름과 영주산 사이에는 '넓은목장'이 자리하지만 동쪽은 거의 황야다.

'넓은목장'은 다른 목장과는 좀 다르다. 유명한 이시돌목장 같은 곳은 높다란 울타리가 있고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지만 여기는 울타리도, 관리인도 보이지 않는다. 삼나무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여섯 갈래의 길이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마을은 주민이자 목장 인부들이 사는 곳으로 목장이 너무 넓고 길이 많이 나 있어 따로 통제하지 않는다. 목장 구역만 330만 제곱미터가 넘는다지만 울타리가 없으니 직선로까지가 목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넓은목장'은 공간적으로 넓을 뿐 아니라 완전히 개방되어 여유를 더해 준다. 제주의 황야는 이 넓은목장을 중심으로 질펀하게 펼쳐진다.

최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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