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가장 따뜻한 색, 블루’ ‘캐롤’, 사랑보다 아름다운 당신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201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2015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루니 마라) 수상작 ‘캐롤’은 레즈비언 로맨스이면서 동시에 성장영화다. 그리고 20대 전후의 여성이 다른 계급의 상대와 사랑에 빠지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원제목은 ‘아델의 삶:1장과 2장’이다. 여고생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은 극초반부에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남학생과의 키스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던 반면, 여학생과의 입맞춤은 또 다른 욕망을 불러 일으켰다. 수업시간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배우는데, 그때 교사는 “비극은 막을수도 피할수도 없는 것이지만 본질에 가닿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까지가 아델의 삶 0장이다.

1장에서 그는 파란 머리의 엠마(레아 세이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강도 높은 베드신이 내내 펼쳐지는데, 그것은 그만큼 욕망에 충실하려는 두 여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치다. 유독 아델의 입술이 도드라지게 강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계급 장벽이 놓여 있었다. 아델이 노동계층인 반면, 엠마는 엘리트 계층이다. 먹는 음식에서 미래의 꿈에 이르기까지 둘은 달랐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사람들은 각자의 아비투스를 체화하며 살아간다. 아비투스란 특정계급을 다른 계급과 구별짓는 집단적 관행이나 행동양식을 일컫는다. 계급의 정체성을 인정하게 만드는 사회적 원리다.

1장에서 사랑의 시작과 이별의 징후가 공존했다면, 2장은 결별의 파국을 다룬다. 엠마는 아비투스가 다른 아델과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았다. 사회적 차이는, 때론 건널 수 없는 간극이다.

아델은 사랑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았다. 유치원 교사의 직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있는 ‘나’라는 정체성. 엠마는 아델의 변화를 원했지만, 아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개인전을 열고 있는 엠마에게 마지막으로 외면받은 후, 아델은 마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듯이 뚜벅뚜벅 제 갈길을 간다. 이제 3장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캐롤’의 테레즈(루니 마라)와 캐롤(케이트 블란쳇)의 관계도 아델과 엠마와 비슷하다. 프로레타리아트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는 테레즈와 부유한 집안의 부인 캐롤. 그러나 캐롤은 사진작가를 꿈꾸는 테레즈를 존중하고 사랑했다. 이들은 계급적 차이를 가로질렀다.

테레즈는 아델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좋아하게끔 자신을 가꾸는 것이다. 사랑 앞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는 당신은 사랑보다 아름답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캐롤’ 스틸컷. 사진 제공 = 각 영화사]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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