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흔 통렬한 자기비판 "내 자신이 한심했다"

[마이데일리 = 호주 시드니 김진성 기자] "내 자신이 한심했다."

두산 홍성흔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었다. 본인도 틀에 박힌 인터뷰는 사절했다. 두산 스프링캠프가 진행 중인 4일 호주 시드니 블랙타운 인터내셔널 스포츠파크. 그는 작심했다. 통렬한 자기비판을 쏟아냈다.

"한심했다." "야구를 쉽게 봤다." "올 시즌에도 못하면 끝이다"라는 격정적인 말들이 기억에 맴돈다. 그럴 만했다. 홍성흔에게 2015년은 데뷔 후 최악의 시즌이었다. 93경기서 타율 0.262 7홈런 46타점에 그쳤다. 그는 "한국시리즈 우승도 했고, 우타자 최초로 2000안타도 쳤다. 좋았지만,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난해 왜 그렇게 부진했냐고. 홍성흔은 "야구를 쉽게 봤다"라고 했다. 이어 "야구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는데 예전 생각만 했다. 3년 연속 타격 2위, 20홈런 펑펑 때렸던 시절만 생각했다. 해왔던 대로 하면 되겠지 싶었다. 스스로 타협했다. 방심했다. 내 자신이 한심했다"라고 했다.

지난 시즌 홍성흔 야구는 무너졌다. 타격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됐다. 시즌 막판에 다소 회복했지만, 이미 두 차례의 2군행을 통해 주전에서 밀린 뒤였다. 포스트시즌서도 철저히 조연이었다. 그는 "큰 스윙이 독이 됐다. 내 타격자세로 정확히 친 적이 없었다. 폼이 무너지면서 스트라이크가 아닌 코스에 방망이가 막 나갔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반대 스윙(공이 들어가는 코스가 아닌 코스로 타격하는 것)을 했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홍성흔은 롯데로 이적한 첫 시즌, 2009년 초반에도 부진했다. 그러나 '갈매기 타법'을 고안, 극적으로 타격감을 끌어올려 역대 최고타율 0.371을 찍었다. 2010년에는 갈매기 타법에서 장타력을 가미, 26홈런 116타점을 뽑아냈다. 그는 "그때가 지금보다 더 간절했다. 작년에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마음 속에서 내 타구는 이미 외야담장 밖에 있었다"라고 털어놨다.

▲2군행, 불만 없었다

지난해 두 차례 2군행을 겪었다. 부진과 부상이 원인이었다. 홍성흔은 "두 번째 2군행은 부상으로 결정됐다. 그런데 회복된 이후에도 한동안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그때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 가면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김태형 감독에 대한 불만은 전혀 없었다. 홍성흔은 "감독님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분이다. 그런 마인드를 내가 배워야 한다"라고 털어놨다. 보통 감독들은 고참의 눈치를 어느 정도 살핀다. 홍성흔 정도의 고참이라면 부진해도 2군에 보내는 대신 1군에서 최대한 기회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홍성흔은 "감독님은 그런 게 없다. 무조건 실력 위주로 선수를 기용한다. 그게 맞다. 내가 못해서 2군에 갔다. 감독님의 선수 기용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홍성흔은 "감독님은 주장 김재호에게 할 수 없는, 고참에게만 할 수 있는 좋은 말씀을 내게 많이 해준다. 여전히 감독님은 개인적으로는 내가 잘 되길 바라시는 분"이라고 고마워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냉정하다. 그는 "솔직히 공평한 경쟁이라는 건 없다. 내 구상, 내 마음에 따라 선수기용은 결정된다. 하지만, 성흔이도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잘해야 쓸 것이라는 점은 변함 없다"라고 강조했다.

▲7시30분 기상, 야간훈련까지

홍성흔은 시드니 스프링캠프에서 고3 수험생처럼 생활한다. 그는 "아침 7시30분에 일어난다. 작년에는 하지 않았던 야간 타격훈련도 매일 한다. 해볼 수 있을 때까지 해볼 작정"이라고 털어놨다. 훈련량을 크게 늘렸다. 어차피 지명타자이니 타격만 집중하면 된다. 그는 "박철우 타격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신다. 폼을 바로잡고 있다"라고 했다.

간결한 스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홍성흔은 "중거리 타구를 많이 날려야 한다. 간결한 스윙을 하다 보면 장타도 나올 것이다"라고 했다. 훈련량도 늘렸지만, 연구와 고민의 시간도 늘어났다. 야간훈련이 끝나면 숙소에서 국내, 국외 강타자들의 스윙 영상을 보며 연구한다. 그는 "김현수는 2S 이후 정확히 맞혀 안타를 만들어내더라. 민병헌이 저렇게 간결하게 치는데 어떻게 장타를 많이 칠까 생각도 해봤다. 고민이 많다"라고 털어놨다.

▲올해도 못하면 끝이다

홍성흔은 "올해 이후 2년 더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전제조건이 있다. 올 시즌 재기다. 그는 "올해도 못하면 끝이다. 올해 잘해야 2년 계약을 노릴 수 있다"라고 했다. 자신감은 있다. 그는 "코칭스태프가 아직 내 스윙 스피드가 떨어지거나 순발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하지는 않는다. 내 스스로도 아직 몸이 처진다는 느낌은 없다"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홍성흔은 "올 시즌 나는 백업으로 출발할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후배들이 잘하면 지명타자를 차지할 수 있다. 에반스가 지명타자를 맡을 수도 있고, 기존 주전들 중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가 지명타자를 맡을 수 있다"라고 했다. 시즌 초반부터 페이스를 끌어올리지 않으면 1군 잔류조차 쉽지 않다고 본다.

그는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을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홍성흔은 "내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일일이 읽어본다. 대부분 욕과 비난이지만, 진짜 도움이 되는 말들도 있다"라고 바라봤다. 이어 "은퇴하라는 말을 많이 봤다. 어떤 험담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가족에 대한 비난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은퇴 이후의 삶도 정해놓았다. 홍성흔은 "은퇴하면 미국에서 2년 정도 코치연수를 받고 싶다. 선진야구를 배워서 나만의 타격이론을 만든 뒤 제대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다"라고 했다. 올해 포함 3시즌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코치 연수를 받고 싶다면, 일단 올 시즌 부활이 필수다. 홍성흔은 "나도 내 2016시즌이 궁금하다"라고 했다.

[홍성흔. 사진 = 호주 시드니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두산 베어스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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