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파 프롬 헤븐’에서 온 ‘캐롤’의 사랑법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사랑을 천국이라고 가정하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며, 달콤한 향기가 나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종소리가 들리며, 입 속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음식이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누군가는 장기투숙하지만, 누군가는 단기로 머무른다. 체크아웃 시간이 빨리 오는 사람은 질투와 불안에 숨이 가빠오고, 불신과 권태에 등을 떠밀린다. 그리고 사회적 편견에 눈물을 머금고 짐을 싸는 사람도 있고, 굴하지 않고 더 오래 머무르는 사람도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의 ‘1950년대 금지된 사랑 2부작’으로 부를만한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과 ‘캐롤(Carol)’은 사랑이 견고한 사회적 편견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바스러지고,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한 섬세한 탐구다.

‘파 프롬 헤븐’(2002)의 오프닝신은 부감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 낙엽을 천천히 비춰주다가 기차역 앞에서 멈춰선다. 누군가의 마음이 떨리다가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1950년대 후반 코넷티컷의 어느 마을에 사는 캐시(줄리언 무어)는 남부러울게 없는 주부였다. 남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혼란에 빠진 캐시는 자신을 위로해주는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 디건(데니스 헤이스버트)에게 호감을 느낀다. 1950년대는 동성애가 터부시됐고, 인종차별은 당연시되던 시절이다. 그러나 프랭크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난 반면, 캐시는 편견의 벽에 좌절한다. 영화 마지막에 캐시는 기차역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천국행 기차’에 탑승하지 못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캐시의 선택이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프랭크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솔직하게 반응했던 반면, 캐시는 사회적 편견에 무력했으니까. 그가 1950년대 초반 뉴욕의 겨울을 배경으로 레즈비언 로맨스 ‘캐롤’(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촬영상, 음악상, 의상상 후보작)을 만든 이유는,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반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케이트 블란쳇)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강하게 끌린다. ‘파 프롬 헤븐’에서 실크 스카프가 캐시와 디건을 연결시켰다면, ‘캐롤’에선 장갑이 둘 사이를 이어준다.

이 영화의 오프닝신은, 부감으로 시작한 ‘파 프롬 헤븐’과 달리, 앙각으로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오며 펼쳐진다. 한 남자의 발걸음을 뒤쫓아간 카메라는 레스토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캐롤과 테레즈 앞에 멈춰선다.

‘캐롤’은 외부 환경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느끼며 서로에게 변화를 끼치는 과정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냈다. ‘파 프롬 헤븐’에서 캐시와 디건이 못했던 것을, ‘캐롤’의 두 여인은 해낼 수 있을까. 캐시는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천국으로부터 멀어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사회적 약자의 사랑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캐롤’이다.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법’은 이렇다.

사랑한다면 우리처럼.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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