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군대' 신성민 "공동작업, 서로에 대한 예의죠" [MD인터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 신성민(30)이 돌아왔다. 지난 2월 막을 내린 뮤지컬 '사춘기' 이후로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졌던 신성민이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연출 강량원)로 관객들을 만난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만큼 더 여유로워지면서도 연기에 대한 생각은 더 깊어졌다. 무대에 대한 애착도 더 커졌다.

신성민이 출연하는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에서 적군의 공격을 피해 거대한 나무 위로 올라가 2년 동안 그곳에서 지낸 두 군인의 실화를 모티프로 한다.

본토에서 파견된 베테랑 군인 분대장과 자신이 살고 있는 섬을 지키기 위해 군에 지원한 젊은 병사 신병이 '전쟁 중, 나무 위'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만들어내는 대립과 이해를 통해 우리의 삶이 그 자체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임을 말하며 그 모순의 전쟁에서 진정 인간이 지켜가야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극중 신성민은 신병 역을 맡았다.

최근 공백기를 보낸 신성민은 "쉬다 보니까 시간이 되게 빨리 가더라. 쉬면서 부상 당했던 곳 치료도 받고, 못봤던 친구들도 만나고 부모님도 뵙고 여행도 다녔다"며 "쉬면서도 무대가 그리웠다"고 운을 뗐다.

무대가 그리웠던 신성민이 다시 돌아온 무대는 연극 '나무 위의 군대'. 대본을 읽자마자 매력을 느꼈다. 엄청 재미있다거나 엄청 심오하다거나, 혹은 뭔가에 확 꽂혔던 것은 아니다. 그저 '이상하게 매력 있네?'라는 호기심이 작품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이상하게 매력있네?'였다면 두번째 읽었을 때는 '엄청 재밌고 엄청 깊은 뜻이 있구나.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겠다. 이걸 한번 공부해 보고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알고 싶었죠. 작가가 왜 이렇게 썼을까. 배경에 대한 지식도 많이 없으니 그런 부분도 궁금했고, 솔직히 2차대전을 일본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이기 때문에 감상적으로 자기 변명을 하고 있는 작품은 아닐까 했는데 그것보다 인간과 어떤 관계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 작품은 국적이 불분명한 식으로 해요. 국가, 개인 등 관계성에 대해 더 이야기하죠. 가장 매력적이었던건 인물이었어요. 신병이라는 인물. 이 친구의 상황을 대처하는 자세가 신기하더라고요. '이 놈 봐라?' 했죠."

신병은 전쟁이 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섬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군대에 자원한 군인. 순수하고 긍정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낙관적이고 순박하다. 신성민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병이라는 인물이 신선했다. 항상 한 인물에 연기가 아니라 실존해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정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신병을 탐구했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많은 고민보다 '잘 될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왜 이럴까?' 생각했어요. 타고난 DNA라거나 환경적 요인으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는건 연기하는 입장에서 책임감 없는거잖아요. 왜 그럴까 생각하다 보니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 친구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요. 그들로 인해 이렇게 낙관적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인물이든 단순하지 않기에 신성민은 신병의 감정에 더 세심하게 다가갔다. "인물에 대해 단순하게 어떻다고 말하는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강조한 신성민은 "인물을 분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려운 일이지만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건 내겐 재밌고 즐거운 작업이다"고 말했다.

분대장과의 관계 역시 인물을 탐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년 동안 매일 붙어 있으면 정말.. 분대장은 군인이 된 뒤 점점 타락해 가는거고 신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원을 해서 점점 정의가 있고 지키고 싶은 게 있는 군인이 되어 가요. 분대장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하죠. 근데 또 분대장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습이에요. 마지막에 분대장이 '너 보고 있냐'라고 물으면 '예. 보고 있습니다'라고 해요. '믿을 수 없는 풍경이냐'라고 물어보면 '믿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습니다'고 하죠. 분대장과의 그런 대화 속에서 관객들도 뭔가를 느끼게 되실 거예요."

연습을 하며 신성민 역시 이 대사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신병이 믿고 있는게 뭘까'라는 생각이다.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는다. 관객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는 참 수분이 없게 들려지는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고, 어떤 생각만 갖고 있지 행동으로 실천하기도 쉽지 않죠. 저 같은 경우 신병이 '믿고 있는 풍경을 보고 있다'고 하는건 마음 속 생각이고, 꿈 같은 얘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삶의 방향에 있어서 자신이 살아가면서나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꿈꾸고 있는 그 어떤 것이요. 그래서 얘가 더 매력적이었어요.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아이가 있구나' 했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신성민은 '나무 위의 군대'가 한없이 가볍게 읽다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했다. 계속 생각나고, 또 문득 생각나기도 한다는 것. 그게 또 재밌었다. '왜 이러지?'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가볍다, 무겁다는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강조했다.

인물도 인물이지만 '나무 위의 군대'는 독특한 무대 구조 역시 흥미로운 작품. 2년 동안 나무 위에서 지내는 두 인물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네 번째 배우'라고 일컬어질 만한 거대한 뱅골보리수가 무대를 채운다.

신성민은 "나무 위 무대는 처음"이라며 "처음엔 피로도 쌓이고 영향을 받았는데 사람은 적응하는동물이라고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고 털어놨다.

"연출님은 뭔가 큰걸 강조하진 않으세요. 배우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스타일이죠. 강조하거나 주문하기보단 토론을 많이 하세요. 이번엔 나무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다보니 어떤 움직임을 중요하게 말씀하셨어요. 연출님이 설명하실 때도 몸 쓰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그런 작업 방식도 많이 배웠죠.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사람들로 하여금 효과가 배가 될 수 있는 움직임을 많이 생각해주셔서 참 좋았어요. 뭐랄까.. 연출님은 굉장히 진한걸 좋아하시는데 커피로 치면 에스프레소 같은 캐릭터를 좋아하세요. 투샷 같은?"(웃음)

신성민은 강량원 연출, 혹은 동료 배우, 작품,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등의 질문에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연출 의도를 자신이 섣불리 말할 수 없고, 공동 작업이기에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조심스러웠다. 작품 역시 담고 있는 부분이 많아 어떻다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객들 역시 자신과는 다른 시선일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신성민은 참 신중한 배우였다. 가볍게 받아들일법한 부분도 세심하게 신경 썼다. 그러나 자신이 지켜나가고자 하는 부분에 있어선 나름의 굳건한 기준이 있었다.

"공동작업을 중시해요. 서로에 대한 예의죠. 그 분들이 저한테 믿음을 준 만큼 저도 그에 따라야 돼요. 엇나가기 시작하면 공연은 산으로 가죠.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 서로 의지할 데가 없어져요. 무대에 올라가서는 내 자신을 믿고 상대 역을 믿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공연이 끝나고나서는 연출님을 믿는거죠. 그 분들을 믿고 해야 돼요."

신성민은 스태프, 동료 배우들을 존중하는 만큼 작품을 보는 관객들 역시 존중했다. 그저 "재밌게 보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상 어떤 부분을 말씀 드리는건 선택권에 대한 박탈 같다"고 설명했다.

"쉴 때 많은걸 느꼈어요. 충전도 되고 새로운 것들을 보는 시각도 생겼죠. '세상엔 참 재밌는 게 많구나' 했어요. 어느 순간 일적인 부분에 지쳤었거든요. 대학교 졸업 하면서 일을 시작하고 이렇게 왔는데 뭐랄까.. '내가 하고 있는게 내가 좋아하는 게 맞나?'라고 의심한적이 있었죠. '좋아해서 하는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쉬면서 '내가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느꼈어요. 열정적으로 다시 좋은 작품 있으면 또 해보고싶던 찰나에 '나무 위의 군대'를 만나서 많은걸 생각할 수 있었어요. 이 작품을 보는 분들에게 어떤 부분을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그래도 뭐 하나 담아 가신다면 제 입장에선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연극열전6 첫 번째 작품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오는 19일부터 2016년 2월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02-766-6007.

[신성민. 사진 = 연극열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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