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 리 특별귀화에 대한 기대와 여자농구 현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국가대표팀에서 뛸 수 있게 돕고 싶다."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화두는 KEB하나은행 혼혈선수 첼시 리다. 하나은행은 비 시즌에 2개 구단과의 경쟁서 승리, 리를 쟁취했다. 그동안 리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 구단들은 불편하게 바라본다)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WKBL과 하나은행의 주장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나은행의 관련서류 제출기간이 너무 길었고, 리 에이전트와 구단들의 의사소통도 혼선을 빚었다. 결정적으로 하나은행이 WKBL에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아 특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WKBL은 지난 17일 언론에 리 관련 서류 일부를 공개, 일말의 의심을 완벽히 제거했다. (18일 기사화했다-첼시 리 신분논란 끝, WKBL 해명과 향후 과제)

리는 이제까지 WKBL에 몸 담았던 혼혈선수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188cm에 100kg이 넘는 육중한 체구로 WKBL 골밑을 평정했다. 각종 세부적인 공수 테크닉을 더 연마해야 하지만, 박종천 감독은 덩치에 비하면 풋워크와 피딩능력이 수준급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리는 경기를 치르면서 점점 WKBL에 적응하고 있다.

리는 WKBL 규정에 따라 혼혈선수(부모, 조부모 중 최소 1인이 한국국적을 갖고 있거나 과거 한국국적자)로 인정, 국내선수 자격으로 뛰고 있다. 하나은행이 올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는 것도 샤데 휴스턴, 김정은이 부상으로 빠져있음에도 리와 버니스 모스비를 동시 가동, 트윈타워를 구축한 게 결정적이다.

▲특별귀화 필요성

최근 농구관계자들 사이에서 리의 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국가대표팀에 발탁, 골밑을 강화해 일본과 중국에 밀려난 여자농구 국제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 실제 여자농구는 올해 우한 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자격으로 내년 6월 13일부터 19일까지 프랑스 혹은 스페인에서 열리는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한다. 12개 국가(한국 중국 뉴질랜드 쿠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프랑스 스페인 불가리아 터키 카메룬 나이지리아)가 참가하고, 이들 중 5개 국가가 올림픽에 출전한다. 리가 대표팀에 가세, 양지희(우리은행) 혹은 박지수(분당경영고)와 더블 포스트를 구축하면 내년 최종예선은 물론이고, 향후 5~10년간 어느 국가에도 해볼만하다는 게 농구관계자들의 전망이다.

리는 국내선수 자격으로 뛰고 있지만, 아직 한국국적을 취득한 건 아니다. (미국 시민권자다) FIBA(국제농구연맹)에 따르면 국가당 16세 이후 국적을 바꾼 선수들 중 1명을 FIBA 주관대회에 기용할 수 있다. 현재 만 26세인 리가 귀화하려면 최소 3년 이상 국내에 거주해서 귀화시험 응시자격을 얻고, 실제 귀화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 절차를 밟을 경우 내년 최종예선 참가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특별귀화라는 규정이 있다. 정치 사회 과학 스포츠 등 각종 분야에서 국가에 특별하게 기여할 수 있는 인재에 한해 귀화시험 응시자격을 단축시켜주는 규정. 문태종, 김한별이 이 케이스로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절차는 다소 까다롭다. 일단 리가 WKBL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대한농구협회에 제출하면,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문태종이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우승까지 이끌었지만, 남자대표팀 전력을 장기적으로 강화시킨 케이스라고 볼 수는 없다. 김한별이 여자대표팀에 기여한 건 사실상 제로. 때문에 정부가 농구계의 특별귀화를 좋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는 게 WKBL을 비롯한 대다수 농구관계자의 고민이다.

▲여자농구 현실

대부분 아시아 국가는 10년 전부터 FIBA의 귀화 규정을 제대로 활용, 대표팀 전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그러나 한국은 허약한 행정력과 얕은 정보력으로 이 규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문태종, 김한별 등이 있었지만, 한국정서상 오리지널 외국인의 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농구계는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애런 헤인즈와 앰버 해리스의 귀화를 추진했지만, OCA 규정에 발목 잡혀 무산된 아픔도 맛봤다.

여자농구 현실을 감안하면 리의 특별귀화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현재 WKBL 6개 구단에서 리를 1대1로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이미 리의 가능성과 파괴력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 프로, 아마추어를 통틀어 그만한 가능성과 하드웨어를 갖고 있는 선수도 없다. 이미 국가대표가 된 고교생 박지수가 내년에 WKBL에 입성하지만, 아직 파워와 테크닉이 성인무대를 평정할 정도는 아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정상급으로 성장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한국 농구는 남녀를 불문하고 포스트 강화가 영원한 숙제. 일본 여자농구가 WNBA 출신 도카시키 라무를 앞세워 2013년 방콕, 2015년 우한 아시아선수권대회서 연속 우승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들이 수 차례 강조했지만, 여전히 한국농구는 대표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장기 플랜이 없다.

결국 한국 여자농구가 아시아 정상을 되찾으려면 리를 대표팀에 발탁하는 게 당장의 최선책이다. 리를 대표팀에 뽑으면 향후 5~10년간 골밑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은행 박종천 감독은 "구단이 할 수 있는 건 다 할 준비가 돼 있다. 특별귀화든 뭐든 리가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돕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리의 한국적응력이 참 좋다. 머리도 좋고 한글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한국 음식도 잘 먹는다"라고 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리도 태극마크를 달고 대표팀에서 뛰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다.

여러 정황상 문화체육관광부와 법무부가 농구계의 특별귀화 추진을 곱지 않게 보는 건 맞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농구계가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리의 특별귀화를 시도 자체도 하지 않는다면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한 농구관계자는 "여자농구 수준이 과거에 비해 너무 떨어진다. 리 특별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귀화 절차는 복잡하고 까다롭다. 지금부터 하나은행, WKBL, 대한농구협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이 이미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을 지체하면 특별귀화 절차만 밟다가 최종예선 참가가 불발될 수 있다.

[첼시 리.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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