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마션’, 계속 가기로 했다면 끝까지 가야지[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영화 ‘그래비티’에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은 삶의 의지를 상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네 살 배기 딸이 죽었기 때문이죠. 삶의 허망함을 뼛속 깊숙이 체화한 그녀는 우주에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는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의 질문에 “고요함”이라고 답합니다. 스톤에게 지구의 삶은 침묵과 다를 바 없었겠죠. 그녀에게 침묵은 삶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의미를 관성적으로 견디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스톤은 인공위성의 파편을 맞아 우주에서 조난당했을 때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스톤의 움직임은 절박하게 살아남으려는 행동 보다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협을 간신히 헤쳐 나가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맷 코왈스키를 일찌감치 퇴장시켜 스톤을 우주공간에 혼자 남겨 둡니다. 삶의 허무함에 이끌리던 스톤이 어떻게 삶의 유의미를 깨닫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였겠죠.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이미 사라졌던 맷 코왈스키가 돌아와 보드카 한 잔을 마시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알아. 여기에 영원히 남고 싶을 거야. 조용하니 혼자 있기에 좋고. 눈을 감으면 세상 모두가 잊히지. 여기엔 상처 줄 사람도 없고. 계속 살아봐야 뭐 별거 있겠어? 자식 잃은 슬픔만 한 게 어디 있다고. 하지만 계속 가기로 했다면 끝까지 가봐야지.”

맷 코왈스키의 등장은, 칼 융의 심리학으로 말하자면, 스톤 내면의 남성성(아니무스)이 환각의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니무스는 의식과 권위 그리고 존경에 초점을 둡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맷 코왈스키는 스톤의 상관이었죠.

아니무스의 목소리를 들은 스톤은 그 순간부터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온 몸으로 사투를 벌입니다. 결국, 두 발을 딛고 중력에 뿌리를 내려 “끝까지 가 봐야지”를 실행에 옮깁니다.

영화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유쾌한 긍정주의자입니다. 그는 화성의 모래폭풍에 실종됐다 홀로 남겨집니다. 동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이미 떠났습니다. 와트니는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배에 박힌 철심을 빼내고 제일 처음 한 말은 “난 여기서 죽지 않아”입니다.

자신과 동료의 배설물을 거름 삼아 감자를 심고, 산소와 물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1997년부터 통신이 두절된 패스파인더를 찾아내 나사와 통신에 성공합니다. 그가 외로움을 견디는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루이스 대장(제시카 차스테인)이 남겨놓고 간 70년대 디스코 음악을 듣는 거죠. 와트니는 끔찍한 음악이라고 넌더리를 내면서도 계속 듣습니다.

비약하자면, 루이스 대장이 남겨놓고 간 디스코 음악은 와트니 내면의 여성성(아니마)이 아닐까요. 아니마는 상상과 공상, 놀이에 비중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죠. 디스코 음악만큼 신나는 놀이도 없으니까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공포심에 사로잡힐 때마다 휴스 코퍼레이션의 ‘락 더 보트’, 도나 써머의 ‘핫 스터프’, 아바의 ‘워터루’ 등이 와트니의 심신에 활기를 불어넣었을 겁니다.

와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기로 했다면 일단 시작하라고. 하나 하나 문제를 해결하다보면 살 수 있다고.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고.

[사진 제공 = 워너브러더스, 20세기폭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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