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겁탈신 해명, 어이가 없네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아동 성폭행을 암시한 장면에 웬 '필요성' 운운인가.

어린 여주인공의 겁탈 암시로 물의 빚은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는 논란의 맥락을 잘못 파악하고 있다.

"땅새가 각성하고 변화하는 계기로 필요했다. 그만큼 세상이 썩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였다"는 게 해명이다. 얼마나 안이하게 이번 논란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해당 장면이 전개상 반드시 필요했느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상파 드라마에 어린 여아의 성폭행을 암시한 장면이 과연 적절했느냐 하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전개상 필요했든 불필요했든, 혹은 해당 장면이 극의 가장 중요한 열쇠든 전혀 무의미했든, 제작진은 진정 아동 성폭행 암시가 시청자들도 공감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으로 판단한 건지 설명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 불가피한 장면이었다 쳐도 제작진은 두 가지 '무책임'을 드러낸 꼴이다.

첫째, 극본의 무책임이다. 주인공의 각성은 많은 작품에서 사용하는 기법이다. 충격적인 사건을 배치해 주인공의 의식 전환을 이끌어내는데, 대개 자주 쓰이는 게 예상치 못한 인물의 죽음이다. 독자 역시 주인공만큼이나 충격을 받고, 이때의 반전 효과가 커 몰입도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육룡이 나르샤'는 충격을 키우려다 자극만 넘친 격이다. 어린 여주인공의 겁탈 암시는 불쾌한 충격이다. 시청자들을 놀라게 할 순 있겠으나 어떤 흥미 유발도, 감동도, 신선함도 줄 수 없다. 그토록 많은 각성의 도구 중 왜 하필 어린 여주인공의 성폭행 암시를 선택했는지 이해 못할 노릇이다.

둘째, 연출의 무책임이다. 극본이 최선의 선택을 못했다면 연출이 이를 만회했어야 한다.

제작진은 겁에 질린 채 끌려가는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이를 지켜보는 남주인공의 공포에 사로잡힌 표정을 이어 붙였다. 겁탈을 암시하듯 이후 여주인공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걸어가는 장면도 묘사했다. 이게 최선의 연출이었단 말인가. 그저 자극적 소재를 자극적으로 묘사한 것 밖에 안 된다. 가해자 캐릭터들 중 "내가 먼저야"라고 한 대사는 소름 끼칠 지경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연출 방식에 따라 묘사의 수위나 받아들이는 시청자의 감정은 천지차이다. '육룡이 나르샤' 겁탈신에 자극 말고 무엇이 남았나.

과거 MBC 드라마 '보고싶다'도 비슷한 아동 성폭행 장면을 그려 논란이었다. 해당 드라마는 성폭행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도 강한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그 명분을 지켜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육룡이 나르샤'에는 그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해당 장면을 연기한 아역 배우들, 그리고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시청자들만 안타깝다.

[사진 = SBS '육룡이 나르샤' 공식홈페이지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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