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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배수빈 "누구나 소수자, 정상 규정은 모순이죠" (인터뷰)
15-08-2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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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진중하고 겸손하다.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꾸미지 않는 배우 배수빈에게는 배우 그 자체로도, 인간적으로도 진심이 느껴지는 진짜 이야기가 있다.

현재 배수빈의 진심은 연극 '프라이드' 무대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어 약 2년만에 연극 무대에 다시 선 그는 브라운관, 스크린에서와는 또 다른 호흡으로 관객들을 마주하고 있다.

연극 '프라이드'는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 알렉시 캠벨(Alexi Kaye Campbell)의 대표작으로 1958년과 2015년을 살아가는 동명의 인물 필립·올리버·실비아를 통해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극중 배수빈은 사회적 통념과 내면의 목소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필립 역을 맡았다.

무대에 다시 적응하는 시간을 거친 배수빈은 한층 여유를 찾았다. 무대라는 공간이 어색하지 않고, 지금 이 시점에 무대에 오른 것이 다행이라 느낀다. 그는 "그럴 때 '프라이드'를 하게 돼서 나도 좋고 관객들도 좋다"고 밝혔다.

배수빈은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 무대에 오르며 무대가 주는 매력에 푹 빠졌다. 드라마, 영화 작업을 할 때도 항상 무대가 그리웠고, 자신에게 무대라는 공간이 필요한 시기라고 느꼈다.

SBS 주말드라마 '내 마음 반짝반짝'이 조기종영 되고 스케줄 변동이 생기면서 배수빈에게 '프라이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드라마 작업이 끝나면 연극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상태라 조기종영으로 인해 좀 더 빨리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연극열전 허지혜 대표님과 작품을 많이 해서 이번에 연락을 드렸어요. '공연을 너무 하고싶은데 괜찮은 작품 있을까요?' 물었죠. 마침 '내 마음 반짝반짝'이 종영하게 되면서 '프라이드'와 시기가 딱 맞았어요. 전화위복인가요?"


전화위복이라고 느낄 만큼 배수빈은 무대에서 확실히 다른 기운을 느끼며 자신을 다시 채워가고 있다. 매체와 무대가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인지하면서 전하고자 하는 본질은 똑같이 표현하려 한다.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하고자 하는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일까. 매체에서나 무대에서나 배수빈의 눈빛과 기운은 그 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전한다. '프라이드'에서도 1958년의 필립, 2015년의 필립의 마음이 배수빈을 만나 더 잘 전달된다.

"원론적으로 들어가면 저는 저를 비롯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많아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측은함이 많아서 저를 감싸고 있는 전반적인 생각들이 어떤 캐릭터를 구축하는데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게 저에게는 가장 큰 베이스거든요. '불쌍하다' 정도까진 아니고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보니까 그런 베이스가 항상 있어요. 그래서 더 위로를 하면서 기쁨도 주고 슬픔도 주게 돼요. 필립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비슷했어요. 측은함에서 시작했죠."

배수빈은 필립이 갖고 있던 자기 부정들, 시대를 관통하면서 그가 숨기고 살아야 했던 많은 것들, 밀어내야 했던 수많은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부터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접근하다보니 그의 곁에 더 다가갈 수 있었다.


그는 "필립이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말하다 보니까 자신을 부정하는 모습과 대사들이 많이 아팠다"며 "사실 1막 5장에서도 어떻게 보면 올리버가 계속 공격을 하는거라 버티기가 되게 힘들다. 초반부터 무너지고 싶고 '난 너를 사랑해'라고 하고도 싶은데 계속 부정을 하다보니 그 부정과 억누르는 과정이 어렵다"고 고백했다.

연습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꼈지만 그 해답은 역시 무대에 있었다. 공연 전엔 풀리지 않았던 것들도 막상 상황에 맞닥뜨리니 자연스럽게 풀렸다. 연습 과정에서는 분석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로만 가기에는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고민을 거듭하며 진짜 필립이 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도 무대에서 본인만 느낄 수 있는 공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1958년 필립과 2015년 필립은 동질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에요. 시대는 형태적인 것들만 달라지지 동어 반복의 연속 같아요. 1958년 필립과 2015년 필립은 그 시대가 주는 것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래야 살 수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에요. 2015년 필립이 1958년에 살았으면 1958년 필립과 똑같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살았을 거예요. 1958년 필립이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통해 조금씩 발전되면서 2015년 필립이 된 것 같아요. 실비아가 마지막에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하는데 앞으로 시대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계속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 고통의 역사를 통해 조금씩 더 좋은 쪽으로 가게 될 거예요."

배수빈은 '프라이드'에서 필립이 주는 전반적인 것들은 '자기 부정'이라고 했다. 자기 부정으로 인해 필립이 느껴야 하는 고통의 강도를 드러내고 싶었다. 자신을 부정하고 외면했던 시간들에 대한 아픔이 큰 틀이다. 그 안에서 순간 순간 울컥한다. 감정을 억누르는 필립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배수빈은 "나는 감정을 억누른다기보다 모른척 할 때가 많다. 다 표출하고 살면 어떻게 살겠나"라며 "그렇게 해서 돌아가는 게 또 세상이다"고 말했다.

"꽂히는 대사들이 그 때 그 때 되게 많아요. 최근에는 올리버가 '나 어릴 때 이모가 올리버는 참 좋은 사람인데 영혼이 길을 잃었다'고 하는 대사에 꽂혔어요. 사실 그건 저도 느꼈었거든요. 누구나 영혼이 길을 잃은 느낌을 받잖아요.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요. 지금도 늙진 않았지만 젊은 시절에 그런 상태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 그 대사가 깊숙이 다가와요. 특히나 요즘 같이 위로가 필요한 시기, 내가 번 돈으로 나 한 몸 먹고 자는 것도 버거운 이 시대에는 정말 더 와닿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작품이 더 위로를 주는 것 같기도 해요."

'프라이드'는 근본적으로 프라이드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동성애를 다루다 보니 의도치 않은 편견을 안고 시작한다. 이와 관련, 배수빈은 "약간 이질감이나 거부감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냥 어떤 소재에 대한 차용일 뿐, 억압 당하고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에 사는 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잖아요. 소수자라는 건 어느 때나 바뀔 수 있는 거예요. 그건 제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부정을 해야만 할 때는 굉장한 아픔들이 있죠. 동성애자 뿐만 아니라 인종 차별, 노예 제도 등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세상이 더 넓어지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됐을 때 더 다양해지고 풍유로워지지 않을까요? 더 인간적인 쪽으로 메시지를 주고 싶어요. 정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규정할 수가 없어요. 누가 정상인데? 모두가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정상인가? 그건 아니에요. 정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각자의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 거예요. 그 기준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모두가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정상인 거야'라고 한다면 그건 되게 모순이 있는 거죠."


배수빈은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 역시 강조했다. 모든 일에 있어 프라이드가 중요하다는 것. "태어난 것 자체가 중요한건데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되냐에 봉착하게 된다"고 밝힌 배수빈은 "자존심, 자부심이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프라이드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저는 직업이 연기자니까 사람의 감정들이나 내지는 그 사람들의 아픔, 즐거움을 전하는 메신저예요. 그 역할을 하려면 그 사람의 마음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히 있죠. 그 사람들에 대한 이해나 헤아림 같은 것들이 꼭 필요한 직업이에요. 연기를 잘 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헤아리느냐가 그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연기자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어요. 항상 이 사람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 들어오는 기분이나 감정들을 고스란히 받으려고 노력해요."

필립을 이해하는데 있어 같은 역할을 연기하는 강필석이 주는 도움도 크다. 배수빈은 "필석 배우가 정말 좋은 배우인 것 같다. 같이 연습을 하면서도 그 친구는 정말 연기의 기본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필석이에게 많이 물어보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내 스타일도 찾았다"고 말한 뒤 "사실 올리버보다 필립(강필석)이 더 좋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필석 배우는 연기자로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억지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죠.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찾는 방법들이 비슷해요. 아쉬운건 같은 역이라 같이 무대에 서지 못한다는 거예요. 같이 붙었으면 난리 났을 것 같아요. 만약 같이 무대에 오른다면 전 나치 할래요. 채찍을 들고 때릴 거예요.(웃음) 올리버의 경우엔 (박)성훈이랑 (정)동화가 너무 달라요. 웃긴 말로 성훈 올리버가 감성적 게이라면 동화 올리버는 약간 센스티브(sensitive)한 게이 같아요. 성향에 따라 많이 나뉘어져 재밌어요. 같은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다 보니까 서로의 감정은 너무나 충만할 정도로 느끼고 있고 그래서 더 다른 호흡이 재밌어요."

배수빈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기에 대해, 인생에 대해 안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배수빈 본이의 생각은 달랐다. "매 작품 들어갈 때마다 맨날 멘붕이고 신세계다"고 단호히 말했다.

"어떤 작품이든 다른 사람이니까 다 달라요. 참고할 것들이 많이 쌓이긴 했지만 또 그것만 가지고 그 사람을 표현한다는 것도 웃긴 거거든요. 그 인물에 들어가야 해요. 다른 이의 마음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우주를 만나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프라이드'를 할 때도 정말 새로운 우주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싸가지 없이 하면 절대로 못해요. 정말 낮게 깔고 들어가야 그 인물이 될 수 있어요. 제가 너무 세버리면 인물이 그 곁을 내주지 않기 때문에 항상 나를 비우고 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지금은 필립에게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더 곁을 내줬으면 좋겠어요."

연기에 대해 차분하지만 치열하게 고민하는 배수빈은 그래서 더 무대에 서려 한다. 드라마 및 영화와 함께 2~3년에 한번씩은 무대에 오르고 싶다. 날것이 좋고 마주하는 것들이 좋다.

"물론 무대에 서면서 평가가 뒤따르는데 그건 배우의 숙명이에요.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죠.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치열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려움 때문에 안 할 수는 없어요. '내가 무대를 왜 서느냐'를 알고 있어야 해요. 그 자체가 저의 프라이드를 만드는 거죠. 사실 무대라는 공간은 굉장히 무서운 공간인데 그건 배우가 감당해야될 부분이에요. 이번 '프라이드'는 그래서 더 저에게 큰 자양분이 될 것 같아요. '프라이드'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닿아 있는 작품이에요. 많은 분들이 보시고 자신의 프라이드에 대해 생각하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연극 '프라이드'. 공연시간 180분. 오는 11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문의 02-766-6007.

[연극 '프라이드' 배수빈. 사진 = BH엔터테인먼트, 연극열전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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