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거기' 이창훈 "일상적이지만 연극적인 작품 놀라웠죠" (인터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무대 위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연극 '춘천, 거기'에서 찌질하고 코믹한 모습을 보여줬던 배우 이창훈은 예상과 달리 진중하고 침착한 배우였다. 무대에서 나오는 그의 탄탄한 연기는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진중하게 인물에 다가가고 작품에 임했기에 가능한 연기였다.

이창훈이 출연중인 연극 '춘천, 거기'는 아홉 남녀의 각기 다른 사랑 색깔을 옴니버스 식으로 그려내는 작품.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픈 사랑과 확고한 믿음 아래 완성되는 사랑, 솜사탕처럼 달콤하기만 한 사랑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현실에서 누구나 겪었을 법한 관계와 감정으로 솔직하게 그려내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수작으로 평가됐다.

세진의 애인이자 대학 복학 4년생인 영민 역을 연기하는 이창훈은 극중 세진의 옛 연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워 하고, 또 그런 세진을 너무 사랑해 찌질해지는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실제 어디선가 봤던 것만 같은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공감을 얻기도,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무대 위 모습이 자연스럽지만 이창훈은 언제나 긴장감을 갖고 무대에 오른다. 이창훈은 "완전히 익숙해져 버리면 스트레스가 오기도 하는데 '춘천, 거기'는 워낙 캐스트가 다양하다 보니 오히려 제 감정에 집중하기가 수월하다"고 밝혔다.

이창훈은 김한길 연출과 함께 작품을 해오면서 '춘천, 거기'와도 인연이 닿았다. 지난해부터 김한길 연출은 이창훈에게 '춘천, 거기'를 언급했다. 그 역시 약 8년 전 '춘천, 거기'를 본 적이 있기에 합류에 긍정적이었다. 잘 쓰여진 대본, 적절하고 세심한 연출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8년 전에 처음 '춘천, 거기'를 봤는데 그 당시만 해도 이런 일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극들이 많지 않았어요. 정말 놀랐던건 일상으로 다가오면서도 굉장히 연극적이더라고요. 배우들 움직임이 관객에게 오픈을 하면서도 디테일하게 연극적으로 흘러갔어요. 보여지는 이야기는 굉장히 소소하고 우리 얘기 같았고요. 무대 위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무대를 바라보고 연기하는 등 동선이나 시선 같은 것들이 연극적인 호흡에 맞춰지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관객들에게 일상으로 보이는 것이 놀라웠죠."

극중 이창훈이 연기하는 영민은 너무도 현실적인 찌질한 남자친구. 세진을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 집착이 질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본인조차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그렇게 돼버리니 애잔하기도 하다.

"영민이는 대본을 읽으면 각이 딱 나오는 인물일 수도 있어요. 어딘가 있을법 하잖아요. 제가 해석을 많이 넣고 만드는걸 좋아하다보니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글이 워낙 잘 쓰여져 있다보니 다른 해석이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게 중간 중간 영민이가 웃기잖아요. 근데 그게 정말 웃기지 않고 '이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하고 태도는 왜 이런가'를 이해해야 돼요. 영민이가 깽판 치고 그러는 행동은 납득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감정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무대 위 영민이가 워낙 감정적으나 행동으로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관객석에서는 야유가 나오기도 한다. 이창훈은 "야유가 진짜 많다. 후기에 '인간 쓰레기'라고도 하더라. 한 번은 뺨 맞는 장면에서 한 관객이 '한대 더 때려라'라고 하기도 했다"며 "뭐만 하면 '어우~' 이러기도 하는데 당연한 반응 같다. 귀로 들리는 반응이 진짜 많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영민을 마냥 미워할 수는 없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미워할 수만은 없는 코믹한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기 때문. 기본적으로 이창훈은 방방 떠있는 성격은 아니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적절하게 코믹적인 모습도 극대화하면서 확장시키고 있다.

"제 안에 있는 또 다른 모습을 끄집어내는 거죠. 근데 사실 애드리브는 거의 없어요. 티나지 않는 범위에서 조용조용하게 애드리브를 하고 디테일을 슬쩍 슬쩍 주지만 많이 차지하게 하려고 하진 않아요. 관객들에겐 잘 안 들리겠지만 제 안에 쌓을 수 있게 디테일을 주는 거죠. 술 취해서 깽판 칠 때 '쉽다. 쉬워. 사랑이~'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하는데 글 자체가 디테일해서 크게 디테일을 주진 않아요. 너무 디테일하면 배우 입장에선 갇힐 때가 있는데 연출 라인이 세심하다 보니 쪼개서 분석하고 개념화하는 게 수월해요. 디테일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되게 많고요."

그렇다면 실제 이창훈에게도 영민이 같은 시절이 있었을까. 이창훈은 "나도 대학생 때 내가 쿨한 줄 알았는데 또 그렇지 않더라"며 웃었다.

"대학 다닐 때 여자친구한테 전 남자친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물어본적이 있어요. 20대 초반이라 어렸죠. 쿨할 줄 알았는데 대답을 안하니까 '괜찮아~ 나 그런 거 없어~' 이러면서 물어보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여자친구가 살짝 말해줬는데 그 얘기 듣고나서 네시간동안 말을 안 걸었어요.(웃음) 여자친구도 계속 제 눈치를 보고.. 그런 경험을 하면서 성숙해지는거겠지만 대부분 그런 경험이 있을 거예요. 영민이는 사실 많이 참고 배려하는 친구인데 그 배려가 세진이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단순히 술 마시고 꼬장 부리는 애가 아니에요. 아직 성숙되지 않은 상태일 뿐 배려심이 깊어요. 자기 딴에는 참고 폭발한 거죠."

이창훈의 평소 연애 스타일에서도 영민의 배려심이 느껴진다. "상대에게 좀 맞추는 편"이라고 밝힌 이창훈은 "소리 지르면서 싸운적은 별로 없다. 화도 별로 안 나고 상대에게 맞추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춘천, 거기'를 하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크잖아요. 제가 생각하고 제 시선으로 바라본 사랑이 사랑이 아닌가 해요. 이 사람한테서 내가 결여를 느낄 때, 나의 결여가 이 사람으로 인해 채워진다고 했을 때 사랑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정서적인 결여와 그걸 채우는 것에서 감정이 증폭되는 거죠. 또 평소 배우들은 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사랑을 할 때도 결이 잘 맞는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디테일한 감성을 서로 느끼고 잘 맞는 사람이 우정이든 사랑으로 발전되고 그게 행복인 것 같아요."

'춘천, 거기'를 비롯 다른 작품에서의 이창훈은 관객들에게 부담 주지 않는 연기를 펼친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더 편안함을 주는 것. 하지만 이창훈은 설렁설렁 준비 안 한 듯한 호흡으로 툭툭 던지는 것들이 사실은 정말 열심히 찾고 고민하고 분석한 결과라고 고백했다.

그는 "너무 많이 드러나지 않게, 하지만 또 보이게끔 한다"며 "이번에 '춘천,거기'를 통해서는 상황에 맞춰 연기하는 것들과 나로서 출발하는 여러가지 형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배우 이창훈이 더 궁금해졌다. 진중한 모습에서 나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사람 이창훈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2005년 데뷔해 배우 11년차.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읽는 것을 좋아했던 이창훈은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탓에 홀로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나오는 라디오 드라마를 녹음해 남자 목소리를 지우고 여자 목소리에 맞춰 자신의 목소리를 입히고 연기하는 작업이 하나의 놀이였다. 연기를 남에게 보여준적은 없지만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연기를 했다.

하지만 착실했던 그이기에 대놓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수능을 본 뒤 몰래 연극영화과 시험을 보기도 했지만 결국 일반적인 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군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또 다시 연기에 대한 열정이 꿈틀댔다. 여전히 혼자 뭔가를 중얼거리고 외웠다. '내가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서 그냥 살아도 회사 화장실에서 또 이러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연기를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제대하고 한 학기 다닌 다음 겨울에 대학로에 무작정 와서 극단 문을 두드렸어요. 쫓겨나기도 했죠. 누가 받아주겠어요. 검증도 안됐지, 전공도 아니지. 그렇다고 잘생기지도 않은 애가 와서 연극하고 싶다고 하니 웃기죠. 그러다 우현주 대표님을 만나게 되면서 연극을 시작하게 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어머니도 염려가 많으셨지만 아직까지도 염려는 하시는 채로 응원해주세요. 연기한걸 후회한적이 진짜로 한 번도 없어요. 물론 '아, 때려치고 싶다' 이런 감정이 들 때는 있지만 무슨 일이든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때려칠 마음은 있는 것도 아니고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꾸준히 연기하며 점점 경력이 쌓이다 보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주변 사람들이 '배우'라고 인식해주고 본인 역시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심적으로도 안정감이 첨가됐고 계속 앞을 보고 배우라는 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연기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아르바이트 안 한지 2년 정도 됐는데 그거로도 그냥 행복하고 그래요. 좋아해서 이 일을 하잖아요. 아직도 철이 없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받아들이는 것도 있어야 돼요. 어쨌든 지금 계속 일을 하면서 어릴 때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아졌는데 돌이켜보면 뭔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진 않았던 것 같아요. 현재에 충실하고 잘 해내야 하는 거죠. 지금 일단 잘 하는 것이 중요해요. 관객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같이 좋은 기운을 받아서 즐기게 되는 연기를 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연극 '춘천, 거기'. 공연시간 120분. 오는 8월 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 문의 02-569-1614.

[배우 이창훈. 사진 = 스토리피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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