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펜타포트'에서 '시대유감'을 떼창했다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인천 이승록 기자] "이 뭣 같은 세상 뒤집을 준비가 됐습니까?"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4만5천 명의 관객이 함성을 내질렀다. 1995년 가사가 삭제돼 발표된 지 꼬박 20년이 흘렀어도 '시대유감'은 유효했다.

10주년을 맞은 2015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서태지는 둘 째날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섰다. 그가 국내 록 페스티벌에 출연한 건 자신이 직접 주최한 ETPFEST를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즉, 서태지의 팬뿐 아니라 록 음악 마니아들이 몰려든 공연이었다.

서태지는 일부 록 마니아들 사이에서 썩 호감 얻는 가수가 아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유명세를 얻어 아이돌 혹은 댄스 가수 출신 정도로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그가 전 세계적 록밴드 스콜피온스,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일렉트로닉 그룹 프로디지와 나란히 10주년 펜타포트의 헤드라이너로 선다는 데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주최 추산 관객 4만5천 명. 10년 펜타포트 역사상 최다 일일 관객이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온 관객도 있었겠지만, 서태지가 노래하던 순간 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관객들이 그의 노래에 열광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공연 후 인터넷에 올라오는 관람 후기 중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란 글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실로 대단한 공연이었다.

서태지가 직접 자랑할 만큼 각각 보컬과 반주만 출력하도록 역할이 분배된 스피커의 선명한 사운드는 4만5천 명을 압도했다. 1시간50분간 열아홉 곡을 쏟아냈고, 곡 분위기에 따라 테마를 갈라 몰입감을 높였으며, 비교적 초창기 노래들을 몰아넣어 팬이 아닌 관객들도 '떼창' 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컴백홈' 때는 관객들 중 한 명을 서태지가 지목해 무대에 올렸는데, 수더분한 인상의 한 남성 관객이었다. 그런데 막상 무대에 서자 서태지 못지않은 유려한 랩 실력과 양현석, 이주노 뺨치는 춤 실력에 관객 호응 유도까지, 서태지와 환상적인 듀엣을 보여줘 모든 관객들이 놀라 감탄할 정도였다.

그리고 '시대유감'. 1995년 발표 당시 공연윤리위원회가 심의에서 사회적인 가사를 지적하자 이에 서태지가 항의의 뜻으로 노랫말을 지우고 발표해 파장을 낳은 노래. 결국 사전심의제도 폐지 여론을 촉발시킨 그 노래였다.

장관이었다. 4만5천 명이 '시대유감'에 절규했고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라고 '떼창' 하자 서태지와 관객들의 통렬한 외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묘한 감정이 온몸에 퍼진 순간이기도 했다. 노래가 세상에 나온 지 20년이나 흘렀음에도 여전히 '시대유감'이 사람들의 가슴을 이토록 뜨겁게 달굴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여전히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는 시대인가 하는 두려움이 뒤섞여 심장을 조급하게 두드려댔다.

다만 조금이나마 안심한 건 서태지의 팬이든 그를 싫어했던 이든 인천의 그 시꺼먼 하늘 아래에서 그 순간만큼은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매섭게 '떼창' 했기 때문이다.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사진 = 예스컴이엔티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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