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민의 '팀 정신' 두산 야구 숨은 저력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정말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두산 고영민의 전성기는 2006년~2008년이었다. 타율 0.270 내외, 120경기 내외를 꼬박 소화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도루도 36개, 39개를 기록했다. 타격 정확성은 약간 떨어졌지만, 한 방이 있었다. 그리고 주루와 내야 수비력이 건실했다. 당시 이종욱(NC)과 테이블세터를 구성, 발야구라는 한국야구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했다. 창의적이고 위협적인 주루는 상대 내야수들에겐 공포였다.

이후 부상, 타격부진, 후배들의 성장 등 각종 변수로 주전에서 밀려났다. 2010년 이후 단 한 시즌도 100경기 이상 출전하지 못했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절치부심하며 나름대로 프로에서 버텨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현재 고영민은 쟁쟁한 후배들에게 밀려 1,2군을 오가는 위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영민 같은 선수가 잘해야 팀이 강해질 수 있다.

▲팀 정신

야구는 팀과 개인의 특성이 교묘히 결합된 스포츠. 팀을 우선시하더라도 개인기록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팀에 해악을 끼치거나 과하지 않다면 나쁘게 평가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 고영민은 정말 개인성적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선발로 나가서 팀도 이기는 게 가장 좋긴 하다"라면서도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고 했다.

고영민은 예전과는 달리 1군에 올라오면 2루뿐 아니라 1루 대수비, 대주자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성적을 챙기기 힘든 위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임한다. 고영민은 "팀에서 나에게 원하는 건 번트와 수비, 주루 플레이다"라고 했다. 심지어 "루상에 나가면 도루도 자제한다. 견제사를 당하면 흐름이 넘어가기 때문이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김태형 감독은 준비된 고영민을 잊지 않았다. 적절히 잘 활용하고 있다. 고영민도 팀을 위해 필요한 훈련을 소화해왔다. "2군에서도 꾸준히 운동해왔다. 1루 펑고를 많이 받았다. 아무래도 실전 경험이 2루보다 적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물론 그는 "2루를 보다가 1루를 하니 확실히 편하다"라고 웃었다. 아무래도 2루수보다는 1루수가 해야 할 일이 단순하다. 하지만, 실수를 줄이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고, 주어진 기회에서 팀 공헌도를 높이고 있다.

▲현실 순응

고영민은 3일 잠실 넥센전서 데이빈슨 로메로 대신 1루 대수비 요원으로 출전, 8회 동점 2타점 중전적시타 및 연장 10회 끝내기안타를 터트려 히어로가 됐다. 하지만, 하루 뒤인 4일 경기를 앞두고 만난 그는 "하루 지나고 나니 똑같다"라고 했다. 한 경기서 인상 깊은 모습을 남겼다고 해서 기존 주전들을 제치고 활용도가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

고영민은 3일 활약상을 떠올리며 "타석에서 동점타, 역전타를 생각하고 들어서진 않는다"라고 했다. 자신이 주연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역할부터 착실히 해내야 하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 그는 "지금 팀이 잘 나가고 있다. 순리대로 하면 된다. 팀이 이길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꼭 주전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라고 했다.

고영민은 여전히 30대 초반이다. 왕성하게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나이. 더구나 젊었을 때부터 일찍 1군 경험을 충분히 쌓은 고영민으로선 과거 화려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순응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게 매우 인상적이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야수진이 두꺼웠다. 개개인의 능력이 빼어나고, 화려한 야구를 할 수 있는 스쿼드를 갖췄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주전으로 출전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고영민처럼 대수비, 대주자, 희생번트 등 감초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고영민의 팀 정신은 두산 야구를 뒷받침하는 숨은 저력이다.

[고영민.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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