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자마자 만루홈런' LG 나성용의 인생극장

[마이데일리 = 부산 윤욱재 기자] LG 내야수 나성용(27)이 1군 엔트리에 등록된 것은 사실 '행운'과 다름 없었다.

나성용은 올해 줄곧 2군에서만 뛰었다. 2군에서도 자주 뛰는 선수는 아니었다. LG 2군이 37경기를 치르는 동안 나성용은 12경기에 나섰을 뿐이다. 타율은 .371(35타수 13안타)로 높았으나 장타는 2루타 1개가 전부였다. 포수, 외야수로 쓴맛을 본 그이기에 메리트를 느끼기엔 부족했다.

발단은 정성훈의 부상으로 시작됐다. 올해 LG의 1루수로 맹타를 휘두른 정성훈은 21일 목동 넥센전에서 1루를 밟다 발목을 접질렀다. "7~10일 휴식이 필요하다"는 게 의사의 소견. 정성훈은 "테이핑이라도 하고 출전하겠다"라고 출전 의사를 밝혔지만 양상문 LG 감독은 정성훈을 무리시키지 않고 22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기로 결정을 했다.

1루 자리는 잭 한나한이 메웠으나 지명타자 역시 마땅치 않았다. 2군에는 김용의, 백창수, 안익훈 등이 내려가 있지만 엔트리 제외 후 열흘이 지나지 않아 당장 등록이 불가능했다.

당초 LG는 2군에서 장타력을 끌어 올린 최승준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최승준은 올해 LG의 개막전 4번타자로 나섰으나 부진(타율 .077 1타점)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2군에서는 타율 .292 8홈런 32타점으로 본연의 파워 배팅을 회복 중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실현되지 못했다. 최승준이 퓨처스리그 경기에 나서다 허리를 삐끗한 것이다. 타구를 잡기 위해 점프를 한 것이 예기치 못한 허리 부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돌고 돌아 극적으로 1군행 티켓을 잡은 선수는 바로 나성용이었다. 나성용은 한화 시절이던 2011년 이후 처음으로 1군 무대에 섰다. FA 투수 송신영의 보상 선수로 LG 유니폼을 입은 나성용은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그의 자리는 여의치 않았다. 때문에 어렵게 찾아온 1군행 기회를 살려야 했다.

그 절박함은 과감한 스윙으로 이어졌다. 이날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방문 경기에 7번 지명타자로 이름을 올린 나성용은 1회초 2사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관중들이 '나성용이 누구인가?'라고 궁금증을 갖는 찰나에 나성용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갔다.

김승회의 초구를 친 나성용의 타구는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시즌 첫 1군 타석, 아니 LG 입단 후 첫 1군 타석에서 초구에 만루홈런을 터뜨린 것이다. 134km짜리 슬라이더가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을 놓치지 않았다.

단숨에 5-0으로 달아난 LG가 분위기를 탄 것은 물론이다. 그동안 '물방망이'로 팬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LG 타자들은 이날 각성을 한듯 롯데 마운드를 두들겼다. 20-12 대승. 마침 정성훈, 박용택 등 주요 고참 선수들이 빠져 위기감이 증폭된 상황에서 짜릿한 반전을 보여줬다. 이날 경기 전 "없으면 없는 대로 해야죠"라고 애써 웃음을 지었던 양상문 감독이 함박웃음을 지을 만한 경기였다.

친동생인 NC 외야수 나성범이 '차세대 괴물타자'로 진화하는 동안 나성용의 이름은 가려져 있었다. 극적으로 1군행 티켓을 따낸 나성용은 더 극적인 만루홈런을 터뜨려 자신의 이름을 만천 하에 알렸다. 우연 찮게 다가온 기회를 움켜쥔 나성용의 내일이 기대된다.

[나성용. 사진 = LG 트윈스 제공]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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