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 오승욱 감독 "칸 초청보다 개봉이 더 떨려" [칸 인터뷰]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칸에 온 것보다 개봉이 더 떨려요. 그게 더 무서워요. 관객 10만을 못 넘겨 본 감독의 비애를 아십니까?(웃음)”

오승욱 감독은 영화 ‘무뢰한’으로 제68회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된 소감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1993년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연출부로 충무로에 발을 들였고, ‘초록물고기’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각본을 썼다.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영화 ‘킬리만자로’로 감독 데뷔했다.

이후 15년. 그는 진심을 숨긴 형사(김남길)와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전도연), 두 남녀의 피할 수 없는 감정을 그린 하드보일드 멜로 영화 ‘무뢰한’으로 다시 감독이 돼 돌아왔다.

“오랜만에 작품을 해서 그런지 현장이 많이 달라졌더라고요. 무엇보다 내가 바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전도연 씨에게 아직도 적응을 못 하냐고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웃음) 감이 없어진 것 같아요. 다른 걸 다 떠나 ‘OK’인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사람들이 저에게 ‘무뢰한’ 시나리오를 쓰지 않았냐고 하는데, 썼다고 다 아나요. (웃음)”

약 20회차까지 촬영이 진행될 때는 ‘감독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빨리 감독이 돼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초초했다. 고통스러웠고, 혹시 영화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영화감독이 연기, 미술, 액션 등을 짤 수는 없잖아요. 그 분들이 최고를 가져오면 전 베스트를 찾으면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게 제일 문제였어요. 촬영하면서 고통스러웠던 게 베스트가 뭔지 모르겠다는 거였죠. 그런데 전도연, 김남길 씨가 베스트를 찾게끔, 제가 고생하지 않게 해줘 고마워요.”

‘무뢰한’에 대해 구상한 건 약 10년 전이다. ‘킬리만자로’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다보니 원맨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원맨 남자주인공이 여자의 칼에 찔린다’는 설정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투박하고 거칠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고, 여자를 표현하지 못하고선 자신의 룰만으로 살아가는 남자를 그려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여성 캐릭터를 추가했다. “여자를 정말 못 쓴다”는 오승욱 감독의 또 다른 고난을 이렇게 시작됐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나 직접 본 이야기들을 시나리오에 녹여냈다. 그래도 부족한 부분은 전도연이 풍부하게 바꿔 나갔다.

“전도연 씨가 합류하면서 경직된 것들의 결을 많이 바꿔줬던 것 같아요. 극 중 재곤(김남길)이 혜경(전도연)에게 ‘나랑 같이 살면 안 될까?’라고 말하는 신이 있어요. 혜경이 ‘진심이야?’라고 물어보죠. 그게 뼈다귀 같은 건데, 전도연 씨가 연기를 하니 핏줄이 들어가고 근육, 팔 다리가 생기더라고요. 촬영장에서 그런 걸 보는 게 즐거웠죠.”

김남길은 열정으로 오승욱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감독의 생각보다 더 나아가 재곤의 모습에 피와 살을 붙였다. 오승욱 감독이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찾아와 평상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도 나눈 것도 여러 번이다.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스태프들이 시나리오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이해하고 있었죠. 그건 전도연, 김남길 씨도 마찬가지에요. 최고의 스태프, 배우와 일했던 것 같아요.”

칸 초청은 생각지도 못했고, 개봉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던 영화 ‘무뢰한’. 현장에서 ‘이게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며 걱정을 했던 그는 15년 만에 성공적인 감독 복귀를 끝마쳤고, 다시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기는 한데 쉽지 않아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제가 제일 창피했을 때가 ‘무뢰한’이 올해의 기대되는 영화라고 소개됐을 때에요. 두 차례 소개된 적이 있는데 영화를 못 만들었죠. 그 때 상처가 컸어요. 제가 헛말만 하고 다니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아직까지는 차기작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오승욱 감독. 사진 =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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