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영’, 우리는 모두 아프고 서툰 인간일 뿐이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케이블TV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여배우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다.

“60세가 돼도 인생은 모른다. 이게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니까. 나도 67세는 처음이다. 처음이라 원래 다 아프고 서툰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 앞에서 어린아이다. 누구나 오늘을 처음 살고, 내일을 처음 맞닥뜨린다. 모레는 알 수 없다. 흔히들 시간이 축적된 삶이 현명한 지혜를 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냉랭한 우주는 무정하게 흘러간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간난 아기처럼, 인간은 하루하루를 엉금엉금 기어갈 뿐이다. 그렇게 닥쳐오는 시간 앞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갈피를 못잡고 살아간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인간이다.

노아 바움백(46) 감독은 ‘프란시스 하’와 ‘위아영’에서 시간이 청춘을, 그리고 중년을 어떻게 흔들어 놓는지 위트 넘치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댄서다. 세계적 댄서가 꿈이지만,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다. 함께 동거하던 ‘절친’ 소피(믹키 썸너)는 애인과 독립해 집에서 나간다. 프란시스는 더 싼 월세를 찾아 떠돌고, 급기야 무용단에서도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는 어려운 상황의 한 복판에 던져졌지만,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개척한다. 프란시스는 ‘27세의 나이에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라고 자책하지 않는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삶이지만,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삶의 긍정적인 한 발을 내딛는다. 프란시스의 원래 이름은 ‘프란시스 할러데이’다. 그는 할러데이의 성을 ‘하’로 바꾸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두 팔을 벌린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자신이 겪었던 27세에 대해 “터무니없을 만큼 어렸지만 스스로는 늙었다고 느낀 나이. 모든 게 기대처럼 잘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때”라고 회고했다.

그가 27세에 겪었던 두려움은 중년에도 찾아왔다. 중년이 겪는 두려움을 청춘의 삶과 비교해 만든 영화가 ‘위아영’이다. 44세의 유명 다큐감독 조쉬(벤 스틸러)와 그의 아내 코넬리아(나오미 왓츠)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20대 중반의 힙스터 커플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만나면서 마치 청춘을 되찾은 듯한 활력을 얻는다. 다큐멘터리를 공동 연출하자는 제이미의 제안에 선뜻 응했던 조쉬는 제이미의 색다른 다큐 연출 방식에 혼란을 느낀다.

중년의 조쉬는 변화를 두려워했다. 다큐멘터리를 10년째 촬영할 정도로 원리원칙에 충실하게 살다가 제이미의 자유로운 연출관을 접하면서 갈등을 겪은 뒤 어느 순간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아내에게 고백한다. 그동안 ‘어른 흉내내는 아이’로 살아왔다고. 67세의 윤여정, 27세의 프란시스, 44세의 조쉬는 모두 새로운 시간을 처음 살아내는 어린아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최초 제목은‘비체험의 위성’이다. 노작가에 따르면, “사람은 단 한 번 태어나는 것으로 끝이다. 그는 청년기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유아기에서 벗어나고 결혼을 하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결혼을 한다. 또 노년기에 접어들 때에도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노인들이란 자신의 늙음에 무지한 어린아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는 비체험의 위성인 것이다.”(‘소설의 기술’ 중에서)

우리 모두는 체험하지 못한 것을 처음 체험하는, 아프고 서툰 인간일 뿐이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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