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인정·도전, 김혜수가 ‘멋진 언니’인 이유 세가지[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지난달, 90년대 김혜수 매니저로 일했던 관계자를 만났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해 30년 동안 톱여배우 자리를 지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관계자는 과거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90년대였어요. 김혜수 씨가 한창 바쁠 때였죠. 제가 운전하다가 몇 번 급브레이크를 밟은 적이 있어요. 갑자기 차가 튀어나오니까 어쩔 수 없었던거죠. 당시 김혜수씨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차 안에서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는데, 급브레이크 때문에 입술 위로 조금씩 번졌던 모양이예요. 차에서 내릴 때 웃으시면서 ‘내 입술이 커진 건 너 때문이야’라고 말씀 하시더라고요(웃음).”

김혜수는 쿨하다. 매니저의 운전 솜씨를 탓하지 않았다. 립스틱이 번져 입술이 커 보여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반응을 보였다. 도톰하고 섹시한 입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실제 김혜수는 ‘키스를 부르는 입술’ 설문조사에서 줄곧 1위를 지켜왔다).

관계자의 말을 듣다가 11년전 영화 ‘얼굴없는 미녀’ 인터뷰가 떠올랐다. 당시 필자가 일하던 매체에 사진기자가 부재했다.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어야했다. 김혜수는 극중 캐릭터가 겪고 있는 경계성 성격장애를 분석하기 위해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따로 공부했을만큼 학구파 배우다. 인터뷰는 흥미롭게 진행됐다. 인터뷰가 끝난 뒤 김혜수가 물었다.

“그런데, 사진기자님은 어디 계세요?”

“(가방에서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며) 제가…찍는데요.”

“어머! 멋지다. 난 글 쓰면서 사진 찍는 분들이 제일 부러워요. 그럼, 잘 찍어주세요.”

김혜수는 알았을 것이다. 기자 수가 부족해 볼펜기자가 사진도 찍어야한다는 것을. 그는 내색하지 않고 되레 멋있다고 격려했다. 그의 쿨한 매력은 상대에 대한 배려심에서 나왔다.

쿨한 성격은 타인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졌다. 김혜수는 인터뷰 때마다 한국사회의 병폐 중 하나로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를 지적했다. 그는 동료 배우가 호연을 펼치면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지난달 라디오에 출연해 ‘차이나타운’의 김고은, 박보검, 고경표 등 후배들을 끝없이 칭찬했다. 2013년 KBS 2TV 드라마 ‘직장의 신’에 함께 출연했던 조권에 대해서도 “굉장히 자질이 많은 아티스트”라고 평가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깨끗이 인정한다. 2013년 논문 표절 의혹이 불거졌을 때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석사학위를 반납했다. 구구절절한 변명이 없었다. 일각에선 정치권도 김혜수를 본받으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가 30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세 번째 동력은 끝없는 도전정신이다. 그는 청순미(‘첫사랑’ 1992), 코믹한 발랄함(‘신라의 달밤’ 2001), 섹시미(‘얼굴없는 미녀’ 2004), 호러(‘분홍신’ 2005), 도박판 정마담(‘타짜’ 2006), 코믹한 백수 이모(‘좋지 아니한가’ 2007), 모성애(‘열한번째 엄마’ 2007), 섹시한 요부(‘모던보이’ 2008), 로맨스를 품은 도둑(‘도둑들’) 등 다양한 빛깔의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그는 코미디에 대한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달밤’에 출연했고, 천둥소리만 들어도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분홍신’을 택했다. 이번엔 피도 눈물도 없는 조직의 대모 ‘엄마’ 캐릭터에 도전했다.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망설였을만큼 지독하고 센 캐릭터였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는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캐릭터를 빼어나게 연기했다. 조직의 보스는 남자배우가 맡아야한다는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뜨렸다. 그는 충무로의 영토를 한 뼘 더 확장했다. ‘차이나타운’의 대사를 빌리자면, 김혜수는 자신이 쓸모 있다는 걸 증명했다.

[사진 = CGV아트하우스 제공]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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