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문 불신시대, 김태형 감독의 인상적인 대처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타자를 압도하는 마무리가 없다."

KBO리그는 24일까지 103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끝내기 경기가 12차례 나왔다. 블론세이브도 18차례 기록됐다. 그만큼 경기 막판 역전이 잦다. 뒷문이 불안하다는 의미. 실제 불펜 필승조가 안정적인 팀이 많지 않다. 오승환(한신)이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타자를 압도하는 마무리투수가 사실상 사라졌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24일 잠실 KIA전을 앞두고 "구위만 보면 임창용(삼성), 손승락(넥센) 정도가 타자를 압도하는 마무리투수다. 우리도 그렇고 타자를 압도하는 마무리가 없기 때문에 끝내기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어린 타자들, 8~9번 타자들도 마무리투수를 상대로 자신 있게 방망이를 돌린다. 타자들이 옛날처럼 마무리투수에게 위축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뒷문 불신시대의 현실.

▲마무리투수 강판시킨 김태형 감독

2위로 순항 중인 두산. 하지만, 불펜은 타선, 선발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안하다. 마무리 윤명준에 셋업맨 김강률, 함덕주 체제로 시즌을 시작했다. 구위를 끌어올린 베테랑 이재우도 필승조에 편입됐다. 하지만, 이재우를 제외하곤 풀타임 필승조 경험이 부족하다. 구위 기복도 있고, 타자들을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요령도 아직은 약간 부족하다. 두산의 팀 평균자책점은 5.19로 9위.

23일 목동 넥센전. 김현수가 넥센 마무리 손승락을 상대로 9회 결정적인 역전 투런포를 쳤다. 4-5로 뒤진 두산은 9회에만 3점을 뽑았다. 4-5로 뒤진 8회 김강률로 1이닝을 버틴 상황. 김 감독은 9회 주저 없이 마무리 윤명준을 올렸다. 그런데 윤명준이 박동원과 고종욱에게 연속안타를 맞고 흔들렸다. 윤명준이 2루 대주자 김재현을 견제사 처리했지만, 임병욱마저 볼넷으로 내보내 1사 1,2루 위기.

김 감독의 승부수가 나왔다. 왼손타자 문우람 타석에서 윤명준을 내리고, 좌완 함덕주를 올렸다. 함덕주는 오른손 대타 강지광을 좌익수 뜬공, 스위치히터 서동욱을 2루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2점 리드를 지켰다. 당연히 세이브는 윤명준이 아닌 함덕주의 차지. 두산은 넥센에 위닝시리즈를 거뒀고, 2위를 공고히 했다. 김 감독으로선 꼭 잡아야 할 게임에 승부수를 던진 게 성공했다.

▲굳건한 믿음과 냉정한 마인드

인상적인 건 김 감독의 대처. 김 감독은 윤명준, 김강률, 함덕주를 신뢰한다. 얻어맞더라도 박빙 승부서 계속 투입한다. 이들 아니면 두산 필승조는 살아남을 대안이 없기 때문. 그러나 시즌 초반 적지 않게 결정타를 많이 얻어맞으면서 개개인에겐 내상이 있었다. 함덕주는 부진에 빠졌고, 윤명준은 LG 이병규와 이진영에게 결정적인 홈런을 맞았다. 당하지 않아도 될 패배가 몇 차례 있었다.

결국 김 감독은 아웃카운트 2개를 남기고 마무리투수를 빼는 초강수를 뒀고, 1승을 챙겼다. 결과적으로 승리하면서 김 감독의 절묘한 용병술이 빛났다. 하지만, 만약 함덕주가 결정적인 한 방을 맞았다면 두산으로선 엄청난 후유증을 입을 뻔 했다. 김 감독은 "명준이의 공이 좋지 않았다. 넥센 어린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사실 마무리 윤명준으로선 자존심 상하는 강판. 몇 차례 구원실패로 내상이 있는 상황에서 심리적으로 더욱 큰 타격을 입었을 수도 있다. 물론 자극을 받아 더욱 강인해질 수도 있다. 김 감독이 바라는 건 당연히 후자. 김 감독은 윤명준을 신뢰하지만, 냉정했다. "본인이 이겨내야 한다. 그 역시 (좋은 마무리로 성장하는)과정이다. 명준이에게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라고 털어놨다.

윤명준은 24일 잠실 KIA전서 7-3으로 앞선 9회를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1사 후 최용규를 볼넷으로 내보내는 등 제구에 약간의 기복은 있었다. 타선이 5-3으로 앞선 8회 2점을 추가, 윤명준에게 세이브가 주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미리 불펜에서 준비한 윤명준을 9회 정상적으로 투입, '마무리=윤명준'이란 믿음을 확실하게 심어줬다.

한편으로 함덕주에겐 그날 세이브 1개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김 감독의 신뢰도 더욱 커졌다. 그는 필승조로 시즌을 출발했지만, 초반 거듭 부진하면서 박빙승부보다 추격하는 흐름에 등판한 케이스가 많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요즘 구위가 다시 좋아지고 있다"라고 했다.

뒷문 불신시대에 팀과 개개인 모두를 위한 김 감독의 대처가 돋보인다. 초보 사령탑답지 않다.

[김태형 감독(위), 윤명준(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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