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2030 프로젝트, 주요내용과 과제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2030 프로젝트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난 1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 한국농구 발전포럼의 초점은 KBL의 아쉬운 행정에 맞춰졌다. 하지만, 여자농구 얘기도 있었다. WKBL 최고참 사령탑 하나외환 박종천 감독은 특유의 화려한 언변을 발휘, 1부 주제발표 당시 '여자농구 2030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박 감독의 프리젠테이션은 의미 있었다. 여자농구 현실을 정확하게 짚었다. WKBL과 한국 여자농구가 나아가야 할 포괄적인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았다. 박 감독은 주제발표를 맡은 뒤 직접 발로 뛰며 취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30 프로젝트의 내용은

2030 프로젝트는 무슨 의미일까. 쉽게 말해서 1~2년 앞이 아닌 20년, 30년 앞을 내다보고 중, 장기적인 플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고 여자농구는 아사 직전이다. 5~6명으로 힘겹게 운영하는 팀이 많다. 핵심 멤버 1~2명이 5반칙 퇴장하면 4명으로 5명을 상대하는 웃지 못할 일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여자프로농구 6개구단 선수구성을 보면 중간급이 없다. 15년차 내외의 최고참과 2~3년차 저연차들이 대부분이다. 중간급이 없다. 베테랑들에게 극도로 의존한다. 몇몇 중, 하위권 팀들이 자의 반 타의 반 급격하게 세대교체를 진행 중이지만, 우리은행을 제외하곤 예전에 비해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박 감독은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우선 선수출신이 운영하는 농구교실(주로, 초, 중학교 대상)에서 가능성 있는 자원을 엘리트로 키우자는 것. 실제 은퇴 후 프로는 물론 중, 고, 대학에 코치로 들어가지 못한 농구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농구교실을 많이 한다. 박 감독은 "자세히 살펴보면 간혹 소질 있는 자원이 있다고 하더라"고 했다. 제도권 밖에서 엘리트 차원을 찾자는 것.

또한, 박 감독은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눈을 돌리자"라고 했다. 국제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다. KBL과 WKBL도 혼혈선수에 대한 문호를 개방했다. 그 폭을 더 늘려야 한다는 것.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서양인일 경우 좋은 농구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WKBL을 떠났지만, 김한별(전 삼성)이 대표적 케이스. 제2, 제3의 김한별을 계속 찾아야 한다는 게 박 감독 생각.

마지막으로 해외선수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박 감독은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세네갈, 나이지리아 같은 중앙아프리카에서 좋은 자원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라고 했다. 일본의 경우 농구 유망주는 적은 대신, 유망주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갖춰진 상황. 반면 아프리카에는 환경, 재정적 문제로 가능성 있는 자원이 옳게 자라지 못하는 케이스가 많다. 일본은 그 점을 노린 것이다. 국내에도 신한은행이 과거 현대 시절 외국인선수로 뛰었던 쉬춘메이(중국)의 딸을 육성한 적이 있다. 이런 작업들을 2~30년 뒤를 내다보고 체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게 박 감독 주장. 마스터 플랜과 체계적인 시스템 정착이 필요하다.

▲WKBL에 주문한 것들

박 감독은 WKBL에도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서울 소재에 여자농구 팀을 만들고, 서울 경기를 부활시켜야 한다"라고 했다. WKBL은 여자대학 농구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 몇년 전 한 서울 농구 명문대학이 여자팀 창단 직전까지 갔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 박 감독은 여자 대학팀은 물론, 서울을 연고로 하는 여자 프로팀이 창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에서 인프라가 가장 넓은 서울에서 여자농구를 활성화하지 못하면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박 감독은 국제대회 유치도 적극 주문했다.

박 감독은 외국인선수제도에 대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WKBL은 외국인선수 2명 보유, 1명 출전 시스템. 다음시즌 2명 보유 2명 동시 출전을 확정한 KBL과는 달리 1명 출전을 고수할 계획이다. 확실히 WKBL은 KBL보다 국제경쟁력 향상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결정적인 맹점이 있다. 지난 2012-2013시즌 재도입 이후 외국인선수의 재계약을 허용하지 않는다. 3시즌까지 한 팀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는 KBL도 집중 비난을 받고 있다. 리카르도 포웰, 리카르도 라틀리프 등이 강제로 팀을 떠났다. 스토리텔링을 임의적으로 가로막고, 리그 흥행과 전통 구축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는 모양새.

WKBL은 단 한번의 재계약도 허용하지 않는다. 전력평준화를 위한 조치. 하지만, 인위적이다. 현재 WKBL에서 직전 시즌 뛰었던 선수가 다음 시즌에도 다시 같은 팀에서 뛰려면 일단 드래프트 신청서를 내야 하고, 드래프트 당일 다른 팀들의 지명을 피해 직전 시즌의 팀으로부터 다시 선택을 받아야 한다. 우리은행이 사샤 굿렛과 이런 식으로 두 시즌 연속 함께했다. 어지간해선 쉽지 않은 일. 박 감독은 "2명 중 1명은 구단 판단으로 재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했다.

▲과제

박 감독이 제안한 2030 프로젝트는 구체화 과정이 필요하다. 엘리트 여자농구 인프라 확충을 위해 전국 농구교실과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문화 출신, 해외선수 스카우트 등은 WKBL뿐 아니라 정부 관계부처와도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법적 규제를 풀고 실질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농구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애런 헤인즈, 엠버 해리스 귀화 무산 이후 체육계의 귀화추진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진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들의 이기주의도 봉합해야 한다. KBL이 다음 시즌부터 외국인선수 2인 동시출전을 확정한 건 결국 이사회에서 구단 이익만을 앞세운 단장들이 승인을 했기 때문. 각 팀마다 전력과 사정이 다르다. 외국인선수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WKBL 6개 구단도 마찬가지. 2030 프로젝트가 구체화되기 위해선 구단들의 적극적인 협조 및 투자가 필요하다. 외국인선수 재계약 허용 건 역시 구단 이기주의부터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

WKBL은 이번 비시즌 새 총재를 선임해야 한다. 신선우 사무총장의 직무대행 체제는 지난 시즌 종료와 함께 끝났다. 3년 임기의 새로운 총재를 뽑아서 2030 프로젝트를 검토,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 플랜을 설립해야 한다. WKBL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이사회를 개최, 본격적으로 새 총재 선임 작업에 돌입했다. 여자농구의 20년, 30년 미래를 내다보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박종천 감독(위, 아래), 샤데 휴스턴과 모니크 커리(가운데). 사진 = KBL 제공,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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