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임권택 감독 "외설 아닌 예술, 안성기 있어 가능했다" (인터뷰)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임권택 감독이 '임권택 스타일'을 버렸다.

그의 102번째 작품 '화장'은 김훈 작가의 동명 단편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죽어가는 아내와 젊은 여자 사이에 놓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거장의 신작이라는 점 외에도 기존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서 볼 수 있던 한국적 색채를 걷어냈다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 시킨다.

"수난의 역사나 그 외 힘들게 살아낸 우리의 삶 이야기, 판소리 같은 것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담아내고 우리 문화나 음악, 심지어 미술까지 포함해 우리 문화가 갖는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오래 하다 보니 영화만 봐도 '저건 임권택이 만든 영화'라고 알아차릴 만큼 틀이 생겨 버렸죠. 한 일에 오랜 세월을 살아본다면 제가 하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알거예요. 여기서 벗어나야 삶 자체도 생동감을 얻을 것 같았죠. '해왔던 것을 벗어났을 때 감독으로서 생명력이 유지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연출 제의를 받았어요."

임권택 감독은 "임권택 영화 같다는 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며 자신보다 젊은 감독이 '화장'을 연출한 것 같다는 세간의 평에 흡족해 했다.

"거짓말로 찍은 건 아니에요. 오상무(안성기)의 경우 자신의 부인이 죽어 가는데, 긴 세월 병수발을 하며 정말 지쳤을 거예요. 사랑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이제는 병을 놨으면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이성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죠. 그런 건 젊은 사람들만 갖는 감정이 아니잖아요. 우리 늙은 사람들도 당연히 가지고 있는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기회다 싶었어요."

'화장'은 하루하루 죽어가는 아내를 둔 채 젊은 여자의 싱그러움에 끌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자칫 외설로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소재, 극 중 등장하는 필연적 노출에도 '외설이 아닌 예술'이라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

"감독으로서 염려된 게 오상무 캐릭터였어요. 원작, 영화 모두 오상무와 부인 사이에 별로 애정이 없어요. 부부애는 없더라도 헌신적으로 간호에 임하는 인간의 성실성, 인격적인 그리고 이성적인 정스러움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야 했죠. 이걸 안성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했다면 관객들이 (젊은 여자에 끌리면서도 아내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 하는 오상무 캐릭터를) 믿지 않았을 거예요. 자신의 부인이 앓으며 누워 있는 침대 옆에서 오상무가 젊은 여자 생각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러면 외설로 비춰질 수 있어요. 하지만 안성기니까 가능했죠. 그만큼 배우를 고른다는 게 중요해요."

그를 힘들게 했던 건 김훈 작가와 그가 탄생시킨 소설 '화장'이다. 문장 자체가 힘이 좋고 강할 뿐 아니라 현실을 넘나드는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종종 관념적 세계까지 녹여냈다.

"이 원작을 읽었을 때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존재와 만났구나' 생각했어요.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기 위해 '깊이 파고 들면 되겠지' 정도로 생각했죠. 막상 부딪혀보니 안 되는 걸 된다고 생각했더라고요. 서로 매체가 다르니까요. 관념이나 상상의 세계가 추리돼 쓰여진 소설이지만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 영화들을 거의 다 본 외국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칭찬을 하기에 '어디가 좋아서 칭찬을 하냐'고 물었더니 사실감이라도 하더라고요. '내가 수렁에 빠지지 않고 잘 나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사실감을 극대화 시킨 장면이 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오상무가 씻겨주는 목욕탕 신이다. 임권택 감독이 "내가 찍은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자랑거리"라고 밝혔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인물의 심리 상태 등을 내밀히 그려냈다. 이런 그림들을 완성하기 위해 임권택 감독은 아내 역을 맡은 김호정에게 영화에 꼭 필요한 노출을 부탁했다.

"관객들이 유추해가며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찍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치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죠. 자칫 잘못하면 정말 추한 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잘 찍히면 아름다움으로 보일 수 있었어요. '여기서 놓치게 되면 우리는 망한다'고 했는데, 김호정 씨가 두세 시간 후 찍자고 하더라고요. 찍어 놓고 보니 본인도 납득을 하고,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전 미안하잖아요. 그래도 내가 찍은 어떤 장면보다 자랑거리가 있는 장면이 그 신이에요."

어느새 거장을 넘어 '영원한 현역'이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임권택 감독이지만 자신은 그냥 '감독'으로 불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거장이라니 제 몸에 안 맞아요. 젊었을 때는 '나도 거장이 됐구나' 싶기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냥 영화감독으로 불리길 원해요."

[임권택 감독.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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