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 믿고 쓰는 '만수'의 제자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만수의 제자들. 한국농구는 믿고 쓴다.

미국프로농구(NBA) 샌안토니오 스퍼스 그렉 포포비치(66) 감독은 샌안토니오에서만 20년째 감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올 시즌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그가 키운 수 많은 제자들이 지도자, 해설가 등으로 NBA 곳곳에서 활약 중이다. 애틀란타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의 경우 포포비치 감독 밑에서 17년간 코치로 일했고, 2013-2014시즌부터 애틀란타를 맡았다. 부덴홀저 감독은 샌안토니오의 시스템을 이식, 발전시켜 올 시즌 애틀란타를 동부컨퍼런스 선두로 이끌고 있다.

NBA에 포포비치 감독이 있다면, 국내엔 단연 모비스 유재학 감독(52)이 있다. 지난해 남자농구대표팀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고, 올 시즌 모비스의 3년 연속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일궈냈다. 1998년 감독을 맡았으니 어느덧 사령탑으로만 18년째 쉬지 않고 달려왔다. 28세에 은퇴해 모교 연세대 코치부터 시작한 걸 감안하면 지도자 생활만 20년을 훌쩍 넘겼다. 올 시즌엔 통산 500승을 달성했다.

▲프로감독이 된 만수의 제자들

유 감독이 키워낸 수 많은 제자들은 이미 한국농구 곳곳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엔 프로농구 감독으로까지 영역을 넓히는 추세. 가장 먼저 자리잡은 SK 문경은 감독은 유 감독과 SK 빅스, 전자랜드 시절 사제 관계였다. 유 감독은 2003-2004시즌 전자랜드를 사상 첫 4강 플레이오프에 올렸는데, 당시 문 감독이 간판스타였다.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통합 3연패를 이끈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도 모비스 시절 1년간 유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위 감독은 이후 신한은행 코치로 이동, 임달식 전 감독을 보좌했지만, 사실 유 감독의 제자이기도 하다. 유 감독이 모비스에 부임한 2004-2005시즌 사제 관계였고 지난해 남녀대표팀을 맡으면서 더욱 돈독한 정을 쌓았다. 위 감독은 지금도 유 감독을 살뜰히 모시는 명제자다.

이런 상황서 유 감독이 또 한번 제자를 프로 감독으로 배출했다. KT 신임 조동현 감독이 주인공. KT는 7일 조 감독을 신임 사령탑으로 발탁했다. 깜짝을 넘어선 파격. 조 감독은 아직 만 39세로 40대도 아니다. KT에서 은퇴한 뒤 지난 두 시즌간 모비스 코치로 유 감독을 보좌했고, 과거 SK 빅스, 전자랜드 시절에는 선수와 감독 관계였다. 이로써 유 감독이 키운 수 많은 제자들 중 3명이 프로 감독으로 일하게 됐다. 2명(문경은, 조동현)은 자신과 경쟁하는 KBL, 1명(위성우)은 WKBL 소속이다.

▲믿고 쓰는 만수의 제자들

위성우 감독은 단 1시즌 유 감독과 사제관계였지만, 감독 지휘 스타일은 비슷하다. 위 감독은 만년 최하위 우리은행을 수비, 속공을 컬러로 하는 팀으로 변모시켜 3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일궈냈다. 수비를 중시하는 점, 팀워크를 해치는 선수를 극도로 싫어하는 점, 훈련을 악착같이 시키고 공수 움직임의 빈틈이나 약점을 용납하지 않는 점등이 똑같다. 위 감독이 항상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유명한 것도 유 감독을 보고 배운 것이다. 그런데 문경은 감독의 경우 상대적으로 유 감독의 영향을 덜 받은 스타일. 물론 리바운드, 수비 등 농구의 기본을 강조하고 훈련을 길지 않아도 강하게 시키는 것 등은 유사하다.

유 감독의 또 다른 제자인 KT 조동현 감독의 지휘 스타일에 관심이 간다. 조 감독은 현역 시절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도 성실하면서도 끈질긴 수비력으로 유명했다. 형인 조상현 오리온스 코치가 화려한 3점슛으로 주목 받았다면, 조 감독은 화려하지 않아도 감독, 코치들에게 사랑 받았다. 조 감독도 기본적으로 KT에서 수비와 궂은 일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유 감독 밑에서 최근 2년간 코치로 일하면서 배운 선수단 장악 및 리더십, 각종 전술구사도 유사한 스타일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유 감독은 7일 전화통화서 "동현이는 내가 직접 뽑은 아이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라고 했다. 유 감독은 당연히 다음시즌에도 조 감독을 코치로 데리고 있으려고 했다. 조 감독에게 약 3주 전 직접 KT 사령탑 후보에 오른 사실을 들었던 유 감독. 조 감독에게 스승이자 선배로 많은 조언을 해줬다. 결국 조 감독은 유 감독의 품을 떠나 또 다른 프로 감독이 된 세번째 제자가 됐다.

유 감독은 "동현이는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코치"라고 돌아봤다. 남들의 2~3배로 노력을 많이 하는 지도자였다는 것. KT도 조 감독의 그런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전창진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뒤 영입에 성공했다. 한 농구관계자는 "유재학 감독의 지도력과 용병술, 리더십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 않나. KT가 문경은 감독과 위성우 감독이 프로 감독으로 성공하는 걸 보고 결단을 내린 듯하다"라고 했다.

믿고 쓰는 만수의 제자들. 유재학 감독이 현역 감독으로 더 오랫동안 모비스를 지킬수록 사제 감독대결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 감독이 진정한 한국의 포포비치가 돼가고 있다.

[유재학 감독과 제자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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