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소년' 이석, 김희원 만나 바뀐 그의 인생 (인터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우연이었지만 필연이었다. 하고싶은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우연히 연기를 만났다. 별다른 포부 없이 시작했지만 배우 이석과 연기는 필연이었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이하 '간다')와의 만남은 이석의 인생을 통째로 흔들었다. 우연이 필연이 되며 연기를 시작한 그에게 '간다'는 더 넓고 깊은 길을 열어줬다. 현재 '간다' 연극 '유도소년'에서 코치 외 다역을 맡은 이석을 만났다.

이석은 지난 2012년 겨울 '간다'의 대표작인 뮤지컬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이하 '거평이')에 출연하며 '간다' 멤버로 합류했다. "운 좋게 2기를 뽑았다"고 할 정도로 배우들에게 '간다'는 인기 극단. 그 만남이 이석이 배우로서 한 걸음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간다' 2기 8명 중에 뽑혔어요. 그 때 (민)준호 형이 옛날의 '간다'처럼 공연 배달 투어를 1년간 돌고 싶어 했었죠. '간다'답게. 그게 너무 하고싶어서 단원을 한다고 한 거예요. 작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전국을 돌며 공연을 배달하는 그런 시간을 갖고 싶었어요. '뉴페이스들과 하고싶다'는 준호 형 제안이 정말 재밌었죠."

'간다'에 합류한 뒤 차기작에 대한 걱정은 잠시 접어뒀다. 대학로를 잠시 떠나 유랑하듯 전국을 돌아 다니며 공연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흥미롭고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마을이나 병원, 소외 계층도 많이 찾아갔다. 공연을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이들이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간다' 단원들과도 더 끈끈해졌다. '간다'가 인기 있는 극단으로 거듭난 만큼 믿는 구석이 되기도 했다. 이석은 "2008년에 대학로 무대에 데뷔 했는데 스스로 '간다' 들어오기 전과 후가 많이 다르다"고 밝혔다.

"그 점이 가장 감사해요. 단순히 작품을 몇 개 더 하고 경력 한 줄 생긴 개념이 아니라 제가 배우로서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나 연기를 할 때 신경 써야 될 것들, 노력해야 될 것들이 많이 수정됐어요. '간다'가 어떻게 보면 대학원 같아요.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있다가 대학원 들어온 느낌이죠. 작품하는 것 이상의 공부 같아요."

영화 '해무', '강남 1970' 출연에 이어 영화 '루시드 드림'에 섭외된 것 역시 '간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간다'에서 연기를 했기 때문에 성장했고, 극단에서 배운 것들이 다른 현장에서도 발휘된 것이라 믿는다.

"'간다'가 주눅들지 않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믿는 구석이 생긴 거죠. 대본이나 작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같이 고민하는 게 준호 형이에요. 제 액팅 코치죠. 믿는 선배, 믿는 구석, 믿는 연출, 믿는 형이 생겼어요. 연기적으로 망가지지 않게, 자만하지 않게 계속 잡아줄 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현재 '유도소년'을 함께 하면서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연극의 백미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 "계속 방향을 지키고 가면 노력한 만큼 내가 계속 늘고 잘 할 수 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한 이석은 "'간다'를 안 만났으면 어느 순간 그냥 정체돼서 그냥 그렇게 대충 견디면서 지내지 않았을까? '간다'를 만나서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유도소년'은 슬럼프를 겪고 있는 전북체고의 유도선수 경찬이 엉겁결에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출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피끓는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리며 1997년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인 만큼 이석의 청춘도 돌아보게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룸쌀롱에서 일했어요. 스무살 때 하고 싶은것도 없고 대학에 대해 생각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삼촌이 서른한살 늦은 나이에 서울예대 사진과에 입학해 학회장을 하셨어요. 워낙 연극을 좋아하니까 그 때 다른 과 학회장을 만나 친해진 거예요. 그 분이 배우 김희원 형님이에요. 삼촌은 제가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희원 형님을 소개시켜줬어요. 희원 형님이 제 첫 연기 사부가 되는 거예요."

김희원을 만나 연기를 접하게 됐지만 자신이 연극과를 전문적으로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끼가 있고 사람들을 유쾌하게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연기에 대한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잘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스물한살 무작정 대학로에 나와 스태프도 하고 극장에서 일하며 이것 저것 배웠다. 극단에서 월 15만원을 받으며 다시 입시에 도전했고 명지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다. 스물두살 때 미국에 3개월간 머무른 뒤 군입대를 하고 제대후 2005년 연기에 사활을 걸었다.

"복학하고 나서는 진짜 열심히 했어요. 군대 다녀와서 남은 학기가 다섯학기였는데 연속 장학금을 받았어요. 연기에 대한 성실함을 아버지한테 어필하고 싶어서 장학금에 집착했어요.(웃음)"

졸업 후 이석은 연기가 아닌 뮤지컬 '빨래' 무대 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졸업 후 '어디서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며 데뷔에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은 첫 연기 선생님 김희원. 당시 김희원은 '빨래' 제작감독이었고, 그와 연락이 닿아 추민주 연출과 만나게 됐다.

시작은 무대 감독이었지만 결국 '빨래' 지방 투어에서 솔롱고 역을 따냈다. "무대 감독에서 솔롱고까지 찍고 나온 건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이석은 "'빨래' 이후 계속 소극장 뮤지컬을 했는데 '빨래'가 아니었다면 계속 무대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빨래'를 하면서 좋은 분들을 진짜 많이 만났어요. 뮤지컬을 계속 해오다 '간다'와 함께 하며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했죠. 지금은 배우로서 느낌이 좋아요. 개인적으로 여유도 생겼고 서른다섯살이 되니까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더 잘 될 것 같은 느낌?(웃음) 이제 영화도 더 하고 드라마도 하면서 제 다양성을 많이 보여드려야죠."

이석은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작품을 하든 대중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 어느 순간 개인적인 연기 욕심보다는 작품에 대한 욕심도 많이 생겼다. 자신의 연기와 좋은 작품이 대중에게 믿음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고 몸이 움직이잖아요. 연기도 똑같아요.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렇게 돼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그러려면 좋은 배우가 돼야겠죠? 그래서 계속 노력하는 거예요. 어느 무대에서든 비어 보이지 않게 꽉 채우면서 신뢰를 쌓아가고 싶어요. '이석이 하는건 작품이 재미있어' 할 수 있게 해야죠."

[배우 이석, 연극 '유도소년' 공연 이미지. 사진 = Story P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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