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 MBC, 지성이 연기대상감인 이유 셋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MBC는 배우 지성의 이름을 12월에도 꼭 기억해야만 한다. 지성이 없었다면 '킬미, 힐미'는 없었다. '완벽'이란 수식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연기대상을 받아 마땅한 연기였다.

MBC는 오는 12월 대상 후보 리스트에 지성의 이름을 가장 먼저 적어야 한다. 세 가지 이유다.

'킬미, 힐미'에서 지성은 무려 일곱 가지 인격을 연기했다. 차도현, 신세기, 페리박, 안요나, 안요섭, 나나, 미스터X 등 인격별로 개성도 워낙 강했다. 지성 홀로 한 작품에서 일곱 개의 캐릭터를 연기한 셈이다. 1인2역만 소화해도 배우에게 박수를 보내곤 하는데, 1인7역이나 다름 없는 연기를 소화했으니 박수를 보내고 또 보내도 부족하다.

연기력이 섬세함의 극치였다. 주인공의 인격이 수시로 변한다는 판타지적 설정은 자칫 어설픈 느낌을 줄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지성의 연기 덕분에 일곱 가지 인격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세기의 거친 눈빛으로 차가운 말을 쏟아내다가도, 마치 TV채널 바꾸듯, 순식간에 차도현의 순한 눈빛과 따스한 말투로 달라졌다. 철부지 여고생 인격 안요나가 되자 여성스러운 말투와 손짓은 물론 애교도 능청스러웠다. 서른 여덟 살 된 남자배우의 여고생 연기였다.

페리박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페리박이 차도현을 떠나는 순간, 문을 열자 그가 꿈꿔왔던 커다란 배와 푸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고, 그 순간 페리박의 표정은 비로소 꿈이 이뤄졌다는 기쁨과 그가 강조하던 '자유'의 실현의 감격 그리고 작별의 아쉬움이 뒤섞인 실감나는 얼굴이었다. 지성이 얼마나 농익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무엇보다 MBC는 지성이 위기의 '킬미, 힐미'를 구해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킬미, 힐미' 남주인공 자리는 애당초 지성의 몫이 아니었다. 다른 배우들이 물망에 올라 언론에 보도됐고, 특정 배우는 출연을 고사하는 과정에서 소속사와 제작사 간 불협화음이 일어나 논란까지 일었다.

캐스팅 난항이었는데, 지성은 첫 방송 한 달여 전에야 가까스로 합류했다. 우려가 쏟아지던 상황이었다. 지성에게 주어진 짧은 준비 시간 역시 걱정을 키웠다. 하지만 지성은 연기력으로 우려를 잠재웠다. 급성 성대부종이 생기는 체력적 한계 속에서도 마지막회까지 성실한 자세로 촬영을 마쳤다. 뒤늦게 합류했으나 '킬미, 힐미'를 소위 '명품 드라마'로 만들었다.

매해 12월 30일 연기대상을 시상하는 MBC는 주로 하반기에 인기를 끈 작품에 트로피를 줬다. 2005년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부터 지난해 '왔다! 장보리' 이유리까지, 지난 10년 동안 2011년 '최고의 사랑'만 제외하면 모두 하반기 작품 배우에게 대상이 돌아갔다. '최고의 사랑'의 경우 배우가 아닌 작품에 대상을 준 해였다. '최고의 사랑'마저도 6월에 종영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MBC가 일관성을 버려도 된다. 단지 상반기 방영 작품이라는 이유로 12월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킬미, 힐미'를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성은 좋은 배우였고, 최고의 연기였다. 대상감으로 전혀 손색 없는 배우이자 연기였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MBC 방송 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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