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정인욱은 그라운드에서 뛰고 또 뛰었다

[마이데일리 = 일본 오키나와 김진성 기자] “아, 다 잘 안 되네요.”

삼성 정인욱은 지난달 26일 넥센과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서 선발 등판했다. 3이닝 10피안타 3탈삼진 2볼넷 9실점으로 크게 부진했다. 3이닝동안 무려 86개의 공을 던질 정도였다. 직구 스피드는 142km에 그쳤다. 정인욱은 슬라이더와 느린 커브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구위가 올라오지 않은 상황. 넥센 타선에 난타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류중일 감독은 이례적으로 정인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신 차려야 한다.” “그렇게 해서 5선발 하겠나?” “집에 보내려고 하다가 참았다.” 부진한 선수를 감싸고 기다려주는 류 감독에게 쉽게 들을 수 없는 코멘트였다. 심지어 류 감독은 경기 후 정인욱에게 그라운드 러닝을 지시했다. 정인욱은 빗속을 가르며 러닝을 한 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만큼 정인욱을 향한 애정이 깊다

류 감독은 왜 정인욱에게 대노했을까. 그만큼 정인욱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인욱은 대구고를 졸업, 2009년 2차 3라운드 3순위로 입단했다. 전임 선동열 감독도 크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잠재력이 뛰어났다. 정인욱은 2010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서 끝내기안타를 맞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성장했다. 류 감독이 부임한 2011년.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6승2패, 평균자책점 2.25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류 감독은 마운드에 구멍이 생길 때마다 정인욱을 찾았다. 정인욱도 기대에 부응했다.

정인욱은 2012년 단 13경기 출전, 1승1패 평균자책점 2.49에 그쳤다. 삼성 마운드 특유의 두꺼운 경쟁을 이겨내지 못했다. 또한, 적은 기회서 류 감독에게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는 데도 실패했다.결국 군 입대를 택했다. 지난 2년간 상무에서 뛰었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12경기서 5승2패 평균자책점 4.00.

류 감독은 장기적으로 정인욱이 배영수의 공백을 메워주길 바란다. 정인욱도 배영수처럼 선발과 중간을 오간 경험이 있다. 삼성 마운드 시스템상 정인욱이 배영수의 역할을 해주면, 올 시즌에도 최대한 무리 없이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인욱은 예상과 달리 류 감독에게 실망을 안겼다. 류 감독은 “배영수보다 못하다. 볼 스피드가 너무 안 나온다”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계속 저렇게 하면 1군에서 못 쓴다”라고 비판했다.

▲미워도 다시 한번

아직 류 감독은 정인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라운드 특별 러닝까지 시킬 정도면 정인욱을 어떻게든 사용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봐야 한다. 류 감독은 “정규시즌 개막까지 1달 정도 시간이 남아있다. 시범경기서도 테스트할 수 있다. 지켜보겠다”라고 했다. 이로써 정인욱에 대한 류 감독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가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인욱이 5선발을 맡지 않더라도 차우찬과 백정현이 있다. 그러나 류 감독은 사실상 백정현에 대한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듯하다. 차우찬의 경우 5선발을 맡겨도 위험부담이 있다. 그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다양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카드. 불펜에서도 롱 릴리프, 원 포인트 모두 가능하다. 류 감독은 “차우찬이 선발로 가면 차우찬의 불펜 역할을 대신할 또 다른 선수를 찾아야 한다”라고 했다. 당연히, 지난 2년간 류 감독 구상에 없었던 정인욱이 5선발이 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

류 감독은 정인욱이 기본적으로 좋은 슬라이더와 커브를 갖고 있다고 본다. 결국 직구 구위가 언제 올라올 것인지가 관건. 시범경기 개막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상황. 현 시점에서 스피드가 너무 나오지 않아도 안 된다. 정인욱은 “다 잘 안 된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잘 잡아야 하고, 변화구 제구도 다듬어야 한다. 지금은 5선발이 아닌 1군 진입이 목표”라고 몸을 낮췄다. 이어 “감독님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라운드를 뛰면서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날 그라운드 러닝이 올 시즌을 준비하는 정인욱에게 터닝포인트가 된다면, 류 감독의 강력한 비판도 대성공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인욱. 사진 = 일본 오키나와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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