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시봉', 왜 한효주를 '쌍X'으로 만들었나 [김미리의 솔.까.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2012년 스크린에 혜성처럼 '쌍X'이 나타났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쌍X'으로 정의됐던 수지(과거의 서현)와 한가인(현재의 서연)이 그 주인공.

최근에는 수지와 한가인의 뒤를 잇는 또 한 명의 '쌍X'이 등장했다. 영화 '오늘의 연애'의 문채원. '오늘의 연애' 티저 예고편에서 이승기의 제자들은 "'건축학개론' 보셨어요? 그럼 쌤 여친도 그 '쌍X'이에요?"라고 물으며 이승기와 18년째 썸을 타는 문채원에게 험악한 애칭을 선사했다.

이런 수지, 한가인, 문채원의 뒤를 잇는 또 한 명의 '쌍X'이 영화 '쎄시봉'의 한효주다. 하지만 한효주는 앞서 언급된 수지, 한가인, 문채원과는 전혀 다른 케이스다. 이 세 여배우에게는 나름대로의 면죄부가 있었지만 '쎄시봉' 속 한효주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수지와 한가인은 승민(이제훈, 엄태웅)이 스스로를 여자에게 농락당해 첫사랑에 실패한 남자라고 위안하기 위해서라도 '쌍X'이 돼야만 했다. 문채원은 남 주기는 아깝고 내가 가지기엔 부족한 이승기를 18년째 어장관리 한다는 점에서 '쌍X'이었지만 결국 이승기와 알콩달콩한 사랑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나쁜 여자가 아니었다.

반면 한효주는 일말의 여지도 없이 자신에게 순정을 바친 남자마저 외면하는 나쁜 여자로 그려진다. 왜 자신의 연인을 떠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가 배우로서 성공하겠다는 자신의 욕망 실현을 위해서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도 명확하지 않다. 처음부터 나쁜여자여야 했고, 그래야만 한 남자의 사랑이 더 돋보일 수 있다는 듯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내러티브의 토대가 된 트윈폴리오의 노래 '웨딩케이크' 가사를 알아야만 그나마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에 한효주가 연기한 민자영이 '남자를 위한 멜로' 때문에 희생된 캐릭터로 보여질 정도다. 목숨바쳐 사랑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했던 첫사랑의 상대는 모두 '쌍X'이었다는 듯, 정우(20대 오근태)의 순수한 사랑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쌍X'의 운명을 타고난 듯 민자영은 그렇고 그런 나쁜 여자로 그려질 뿐이다. 그 덕에 20대 오근태(정우), 40대 오근태(김윤석)의 사랑이 더 위대해 보이는 효과를 얻었지만.

여기에 영화 후반부 정우가 쎄시봉 친구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 과정에서 민자영을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 밝혀지면서 기존보다 더한 '쌍X' 포인트를 적립, 마지막까지 오근태의 사랑을 더 숭고하게 만들기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르고 만다.

그럼에도 20대 민자영을 연기한 한효주는 '배우 한효주'의 진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쎄시봉 남자들의 뮤즈인 만큼 미모는 기본, 당당하고 사랑스러운 매력까지 스크린에 녹여낸다. 한효주가 단순한 '쌍X'으로 그려지는 게 아쉬울 정도. 민자영에게 '건축학개론'의 서연이나 '오늘의 연애'의 현우(문채원)처럼 면죄부를 줄 수 있다면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한편 '쎄시봉'은 그 시절, 젊음의 거리 무교동을 주름잡던 음악감상실 쎄시봉,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단 한명의 뮤즈 그리고 잊지 못할 가슴 시린 첫사랑의 기억을 그린 영화로 민자영에 반해 노래를 시작하게 된 오근태와 그가 사랑하는 민자영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내달 5일 개봉.

[영화 '쎄시봉' 스틸.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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