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감독들, 왜 젊은 식스맨들을 거론했나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내년부터는 세대교체가 될 겁니다.”

지난 여름 진천선수촌에서 남녀농구대표팀을 취재할 때였다. 당시 여자대표팀을 놓고 한 농구관계자는 “베테랑들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마지막이다. 내년부터는 물러나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미선, 변연하, 신정자 등 베테랑들은 “마지막 태극마크”라는 코멘트를 언론에 몇 차례 남겼다. 농구계에서도 여자대표팀의 세대교체 완성을 위해 베테랑들을 놓아줄 때가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8일 여자프로농구 미디어데이가 열린 모 호텔. 취재진이 6개구단 감독들에게 올 시즌 기대하는 선수를 1명씩 꼽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감독들은 약속이나 한 듯 젊은 선수들을 거론했다. 아직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한 채 식스맨으로 뛰는 유망주들. 신한은행 정인교 감독을 제외하고는 시원스럽게 1명을 꼽지도 못했다. 잘 해줬으면 하는 젊은 유망주들을 최소 2~3명씩 언급했다. 심지어 삼성 이호근 감독은 “모든 젊은 선수가 잘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 의미있는 변화

과거 여자농구대표팀은 급진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하다 실패한 적이 있다. 2006년 리우데자네이루 세계선수권과 도하 아시안게임서 참패한 것. 이후 대표팀은 서서히 젊은 선수들의 비중을 늘려갔다. 김정은(하나외환)과 김단비(신한은행)는 세대교체의 중심축을 넘어 대표팀 핵심 멤버로 자리매김했다. 두 사람은 제법 대표팀 경력을 많이 쌓았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 위성우 감독에게 가장 많이 지적과 칭찬을 들었던 주인공들.

인천 아시안게임과 터키 세계선수권대회가 겹친 것도 결과적으로는 세대교체에 긍정적으로 작용됐다. 중국과 일본은 아시안게임에 2진을 내보냈다. 그러나 한국은 아시안게임 우승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2진을 세계선수권대회에 보냈다. 아시안게임서 유망주들로 구성된 중국과 일본 2진이 만만찮았다. 한국은 힘겹게 금메달을 땄다.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한국 여자농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확실히 선수층만 놓고 보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객관적 전력만 보면 한국은 일본, 중국에 이어 아시아 3인자로 밀려났다. 심지어 세계선수권에 나선 일본과 중국 1진 대표팀 역시 좋은 실력을 갖춘 젊은 선수들이었다.

그래도 한국 유망주들 역시 터키라는 큰 물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신지현 이승아 홍아란 박지수 등이 돈 주고도 하지 못할 좋은 경험을 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압도적 신장과 파워의 벽 앞에서 신체적, 기술적으로 극한의 체험을 했다. 여자농구 지도 경력이 많은 김영주 감독의 좋은 지도력도 뒷받침되면서 개개인의 기량이 향상됐다. 그 긍정적 효과가 지난주에 열렸던 여자프로농구 시범경기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계선수권에 다녀온 유망주들이 훨씬 더 여유있는 플레이를 했다는 게 한 농구관계자의 귀띔.

▲ 잔류파들에겐 올 시즌이 기회다

지난 여름 여자대표팀이 이원화되면서 6개구단 시즌 준비가 썩 원활하지 않았다. 두 대표팀에 많은 선수를 내준 구단들은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실제 6개구단이 정예멤버로 훈련을 제대로 한 건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약 1개월 정도였다. 그런데 1개월 정도 제대로 치른 훈련은 베테랑 핵심멤버들, 외국인선수들과의 조직력 구축작업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 여름 두 대표팀에 포함되지 못한 멤버들은 대부분 주목받지 못한 저연차들. 이들은 정상적으로 팀 훈련을 소화했다. 자체 5대5 연습게임이 되지 않아 하나외환의 경우 인근 고등학교를 섭외해 합동훈련을 했다. 대부분 팀은 유망주들의 개인훈련 위주로 여름을 보냈다. 그런데 이 농구관계자는 “오히려 그게 여자농구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라고 했다.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대표팀에 모두 뽑히지 못할 정도의 유망주라면 기본적인 기량이 그리 좋진 않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만약 대표팀 주축 멤버들이 비 시즌 팀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했다면 당연히 조직력 위주의 훈련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축멤버들과 최고의 유망주들이 두 대표팀에 분산되면서 자연스럽게 6개구단은 나머지 유망주들의 개인훈련에 포커스를 맞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실제 지난 여름 신한은행 김천 전지훈련 현장을 찾았을 때 철저히 유망주들 위주의 기본기술과 전술훈련이 진행됐었다. 정 감독이 “개인적으로 윤미지를 지켜보고 싶다”라고 한 건 단순한 기대발언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정 감독은 “미지에게 분명히 기회를 줄 것이다”라며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나머지 5개구단 역시 훈련 흐름은 비슷했다. 유망주 위주의 식스맨 추가발굴이 주 목적이었고, 그 성과에 따라 몇몇 인물들이 지목됐다. 우리은행은 김단비 이은혜 박언주, KB는 김수연 김채원 김보미, 하나외환은 백지은 염윤아가 그 주인공. 박언주 김수연 김보미 등은 연차가 제법 쌓인 식스맨들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해당 구단의 좋은 성적, 그리고 한국여자농구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성장해야 할 유망주들. 이들은 지난 몇 개월간 감독들의 레이더망에 들었고, 성실하게 훈련했다. 시범경기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남은 과제는 내달 1일부터 시작하는 정규시즌 때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년을 기점으로 여자대표팀 베테랑들이 모두 떠난다. 세계선수권서 발굴한 유망주 그 이상의 자원이 필요하다. 지난 여름 팀에서 집중 훈련을 받았던 유망주들, 미디어데이서 감독들에게 지목당한 유망주들이 올 시즌 리그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 6개구단의 올 시즌 성적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장기적 차원에서 한국여자농구 발전을 위한 핵심과제다.

[6개구단 감독들(위), 세계선수권대회 장면(가운데), 신한은행 김천전지훈련 장면(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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