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 김선영, "사람의 본질이 드러날때 더 아름답다" (인터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배우 김선영은 묘하다. 강하면서도 여리고, 거침 없으면서도 세심하다.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관객들 속을 뻥 뚫리게 하면서도 짙은 감성 연기로 관객들에게 신뢰를 준다. 그런 면에서 김선영의 무대는 감동을 넘어 참 묘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위키드'와 김선영은 참 닮았다. '위키드' 역시 특유의 묘함이 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인 것과 동시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웃음을 주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어 깊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참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고 행복한 이야기다.

때문에 김선영의 '위키드' 합류는 관객들의 무한 지지를 얻었다. 외모나 음색 뿐만 아니라 김선영 자체가 '위키드' 속 엘파바와 너무도 어울렸기 때문. 전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뮤지컬의 한국어 초연인 만큼 데뷔 15년간 사랑 받은 김선영의 합류는 그 무엇보다도 큰 힘을 실었다.

김선영은 최근 마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많이 기다렸다는 것을 안다. 정신 없이 연습하고 완벽해지기 위해 계속 준비했다. 공연 전엔 많이 긴장도 됐는데 다행히 연습이 많은 도움이 돼서 잘 적응하면서 즐겁게 공연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 "나로서 집중하고 몰입하려 한다"

사실 김선영은 중간에 투입된 만큼 연습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무대에 오른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만큼 모든 것은 김선영 스스로가 온전히 소화해야 했다. 연습과 해석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많은 부담감을 느꼈다. 기존의 호흡에 김선영이라는 새로운 호흡이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함께 섞여지는 과정이 참 힘들면서도 묘한 성취감을 줬다.

김선영은 "그래도 나로서 집중을 하고 몰입하려 했다. 배우를 통해서 그 기질들이 투영돼 나오지 않나.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평소 털털한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며 "안 믿겠지만 사실 성격적으로 보면 내게 글린다스러운 게 있다. 믿거나 말거나다. 다중인격인건지 모르겠지만 엘파바와 글린다의 모습이 내게 다 있다"고 밝혔다.

"사실 내가 외모는 그렇게 예쁜게 아니니까 '위키드'를 하면서 오히려 더 외모를 포기했다. 엘파바가 더 못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초록칠을 더 과감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엘파바가 소외 받는 것은 초록색 피부를 갖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꼭 얼굴을 못생기게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더 망가질 준비를 했다. 그래야지만 2막에 마녀가 됐을 때 대비가 확 되니까 예쁘게 할 수는 없었다."

이에 엘파바의 초록색 분장은 김선영을 더욱 묘하게 만들었다. 얼굴은 물론 몸에도 초록색 분장을 했다. 이에 대해 김선영은 "되게 묘했다. 첫공연 올리기 전에 미친듯이 연습해서 기운이 떨어지고 있어 걱정을 많이 했다. 근데 분장을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다시 에너지가 올라오더라. 스스로 '초록칠을 하니까 뭔가가 올라오나' 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초록의 힘인가.. 또 다른 에너지가 생기더라"고 고백했다.

이어 "엘파바와 글린다라는 두 여자 캐릭터가 끌고 간다. 둘의 화학작용도 좋아야 한다. 그러니 이런 작품을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여배우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고 행복하다. 남자 상대역과 했을 때 느껴지는 것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며 "앞으로 이 역할들을 정말 많은 배우들이 거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자 역할이 한정적이다 보니 미처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지 못한 배우들이 있는데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공연 할 때도 다양한 감정이 든다"

김선영은 엘파바의 다양한 감성을 들여다 보려 했다. 글린다와 있을 때, 피에로와 있을 때, 딜라몬드 교수, 동생, 마법사와 있을 때 엘파바는 모두 다르다. 모든 장면에서 대하는 인물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반응을 전하려 한다. 차별 받는 언니지만 동생을 보호하려 하는 언니의 마음, 딜라몬드 교수를 위로하는 마음, 마법사와의 만남에 대한 설렘과 배신으로 인한 분노, 처음 느껴보는 한 남자를 향한 감정들을 다각적으로 보여주며 엘파바의 모습을 풍부하게 만들 계획이다.

그는 "단순히 털털하기만 하고 으악대는 게 아니라 엘파바에게도 분명히 있을 섬세한 부분을 느끼게 하고 싶다. 단순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연 할 때도 다양한 감정이 든다"며 "너무 슬픈 것 같다. 엘파바는 사랑을 안 받아도 된다고 정당화한 인물이지 않나. 착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산 것인데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울컥하는 것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렇다면 김선영과 엘파바는 어느 정도 닮았을까. 생각지도 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엘파바와 그런 직업을 가진 김선영, 혹은 배우의 인생을 살며 콤플렉스나 억울했던 것들은 없었을까 궁금했다. 그는 "생각지도 않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계속 그런 것 같다. 근데 시간이 갈수록 그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벗어나고 싶기도 한 심리가 있더라. 양날의 검 같다. 관심이 좋으면서도 부담스럽고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받아들이자는 생각이다"고 고백했다.

"엘파바는 좋은 관심이 아니지 않나. 근데 그걸 극복하려고 하는 엘파바의 마음이 너무 안쓰럽고 때로는 측은하지만 대견하다. 그걸 어떻게든 좋은식으로 받아들이고 씻어내면서 긍정적인 삶을 살려고 하는 것들이 나와 비슷하다. 나같은 경우도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 왔을 때 매몰되는 성격은 아니다. 문제를 문제시시키는게 좋은 게 아니다."

이어 김선영은 "콤플렉스 경우엔 사실 콤플렉스까진 아닌데 스스로 미녀 배우라는 생각을 한적이 없어 그만큼 더 노력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내 스스로 전형적인 예쁜 여자 주인공을 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며 "근데 다시 태어날 순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재능을 키워내자는 생각을 햇다. 그래서 신인 때부터 연기에 대한 궁금증도 더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기에 대한 생각은 현재진행형이다. 연기를 재미있게 하는 순간이 너무 즐겁고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일종의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지만 희한하게 재미있다. 그러다 보니 인간승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쁜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외모를 뛰어넘는 그 사람의 본질이 드러날 때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걸 믿는다.

▲ "배우로서, 인간 김선영으로서 얻는 게 많다"

김선영은 엘파바를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살아 오면서 억울한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엘파바의 심정이 이해될 때마다 깜짝 놀란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김선영은 "일상에서도 '저 사람이 지금 어떤 감정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타인의 감정을 잘 느끼다보니 캐릭터 역시 금방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정서적으로 조숙함이 있었던건지 감정이 이해된다"고 밝혔다.

엘파바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마음도 남다르다. 재미와 메시지를 모두 전하고 싶기에 '위키드'와 더욱 잘 맞는다. 김선영은 "단언컨대 '위키드'는 이 시대를 대변하는 명작이다"고 자신했다. 행복하고 건강하고 즐겁고 싶은 반면 그 속을 건드려주는 것이 이 시대를 대변하는 명작 '위키드'의 매력이라 자부한다.

"굉장히 위트 있게 가벼운듯 던지지만 묵직한 메시지가 분명히 있다. 우리 배우들이 내뱉는 가사들도 철학적인데 동화적으로 표현되면서 잘 버무려진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내 취향과 잘 맞는다. 단순하게 동화처럼 표현하는데 거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웃으면서 눈물이 나는 이 느낌이 참 좋다. 복잡한 생각은 안 하려고 한다. 단순히 김선영이 갖고 있는 기량과 진솔함을 최대한, 정말 밀도 있고 솔직하게 무대 위에서 표현만 될 수 있다면 분명히 같이 공감해주는 분들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이어 김선영은 약 15년 간의 활동을 되돌아봤다. 다듬어지지 않아 야생마 같았던 데뷔 초, '과연 배우라는 것이 나랑 맞는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배우를 그만 두려 했던 3년차, 슬럼프를 겪었던 10년차.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했다. 슬럼프를 모르고 지나오는 성격이지만 돌아보면 10년차가 되던 해 더이상 스스로가 새롭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갈증을 느꼈던 그는 10주년 콘서트를 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김선영은 "이 일을 하는게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하나 하나 회복했다. 소중함을 알게된 뒤 또 이렇게 여기까지 왔다. 거창한건 없고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노래를 잘 하고 기술적으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 전체를 전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김선영이 보이는 게 아니라 온전히 그 작품을 온 몸의 세포로 느끼고 가셨으면 한다. 그럴 수 있다면 난 성공한 배우"라고 털어놨다.

"관객이 같이 웃고 울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어떤 디렉션보다도 각인이 돼있다. 진실되게 하려 한다. 장기 공연이 오래 되다 보면 매순간 몰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근데 놓치고 있다가도 다시 각성하려 한다. 잔재주를 보여줄게 아니라 정확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하며 한 번 더 다짐하고 노력하고 있다. 엘파바를 통해 좀 더 담대하고 용기있게, 진짜 같은 인간으로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배우로서도 인간 김선영으로서도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는, 많이 추억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뮤지컬 '위키드'는 브로드웨이에서 10년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대형 히트작이다. 고전 '오즈의 마법사'의 이전 이야기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베스트샐러 '위키드'를 기반으로 했다.

뮤지컬 '위키드'는 오는 7월 31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위키드' 김선영. 사진 = 설앤컴퍼니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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