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특급 신인 실종, 한국야구의 양면을 나타내다 [윤욱재의 체크스윙]

[마이데일리 = 윤욱재 기자]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괴물 신인'은 바로 류현진이다. 지난 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그해 18승 6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23으로 신인왕은 물론 정규시즌 MVP까지 거머쥔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됐다. 이듬해인 2007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임태훈이 중간계투로 7승 3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하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2008년 삼성 라이온즈의 최형우가 신인왕을 거머쥔 이후 지난 해 NC 다이노스의 이재학까지 모두 중고 신인이 신인왕 타이틀을 휩쓸고 있다. 이제 1년차 신인에게 신인왕을 기대하는 것 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다.

▲ 아마시절 혹사, 안타까운 현실의 그림자

프로에 지명되는 신인 선수들 대부분은 각 학교 최고의 선수들이라 해도 무방하다. 고교나 대학 시절 '에이스'로 군림한 선수들이라 '혹사'를 당하고 프로에 올라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정상적인 몸 상태로 프로 데뷔 첫 시즌을 맞이한 선수를 찾기 어렵다.

아마야구의 현실을 되짚어 봐야 한다. 왜 혹사를 할 수밖에 없을까. 아마야구 역시 성적에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고교야구는 주말리그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감독들은 성적을 내야 하는 부담 속에서 산다.

프로에 직행할 수 있는 선수는 한정돼 있다. 그렇다면 대학교를 노크해야 하지만 아직도 주요 대학입시 요강에는 전국대회 16강 또는 8강 이상에 들어야 체육특기자로서 지원자격이 주어진다. 결국 개인보다는 팀 성적이 중요시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어느 대회든 성적을 내기 위해 에이스급 선수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쩌면 류현진에게는 동산고 시절 고2 때 팔꿈치 수술을 받은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고교 시절 3년 동안 53⅔이닝 밖에 던지지 않아 싱싱한 어깨를 갖고 프로에 입문할 수 있었고 데뷔 첫 해부터 괴물 피칭을 펼칠 수 있었다.

결국 팀 성적이 우선시되는 제도와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혹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 2군 시스템도 경쟁력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2008년 기나긴 암흑기를 털고 '가을야구'의 염원을 이뤘다. 이후 롯데는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하며 강팀의 반열에 올랐다. 그 기반이 된 것 중 하나는 바로 상동구장이다. 상동구장은 2007년에 완공된 롯데의 2군 구장. 이 곳에서 좀 더 체계적인 유망주 육성이 가능해지면서 롯데의 전력은 강해질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강팀으로 군림한 두산 역시 이천 베어스 필드란 2군의 요람이 있었다. '화수분 야구'의 꽃은 1군에서 피우지만 그 기반을 닦는 곳은 바로 2군 구장이었다. 두산은 이 구장을 전면 재건축하면서 유망주 육성에 한시도 소홀하지 않고 있다.

3년 연속 통합 챔피언에 오른 삼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경산 볼파크를 갖추고 있었다. 두산과 삼성은 중고신인 열풍을 이끈 진원지다. 두산은 2009년 이용찬, 2010년 양의지를 신인왕으로 키웠고 삼성은 2008년 최형우, 2011년 배영섭이란 작품을 만들었다.

이제 중고신인은 시대의 흐름이다. 무작정 1군에 올려 부딪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2군에 마련된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통해 적응력을 키우고 준비된 선수로 1군에 입성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팜 시스템'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또한 우리나라는 병역의 의무가 있고 병역혜택은 일부 선수의 몫이라 보면 일찌감치 어린 선수들의 군 입대를 실행해 미래를 내다보는 운영도 곁들여지고 있다. 요즘엔 상무와 경찰청의 존재로 군 입대 후에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중고신인 열풍은 이처럼 한국야구의 여러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게 한다. 구단들이 점점 2군 시스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장기적인 플랜에 다가서는 것을 보면 중고신인을 삐딱하게 바라볼 이유가 전혀 없다. 한편으로는 한국야구의 고질적인 문제인 아마시절의 혹사가 반영돼 있어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야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고 리그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각 구단의 2군 시스템이 놀라운 발전을 이룬 만큼 이젠 그의 뿌리가 되는 아마야구도 육성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한화 시절의 류현진.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윤욱재 기자 wj3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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