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풀코스 경험' 임창용에겐 잊지못할 추억

[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이었다. 한편으로는 짜증도 났지만 오히려 잘된 것 같다."

'뱀직구' 임창용(시카고 컵스)은 올 한해 이른바 '마이너리그 풀코스'를 경험했다. 루키리그를 시작으로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모두 거친 뒤에야 메이저리그(ML)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한국과 일본 무대를 거치며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군림했던 그에게 어찌보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을 즐기려 노력했고, 꿈에 그리던 빅리그 마운드를 6차례나 밟았다.

올 시즌을 마치고 7일 아시아나항공 OZ235편을 통해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한 임창용은 차분한 말투로 올 시즌 아쉬움과 내년 시즌 목표에 대해 언급했다. 특히 마이너리그 경험담을 얘기할 때 그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임창용은 지난해 7월 오른 팔꿈치 수술을 받고 약 1년간 재활에 몰두했다. 그 와중에 "재활을 적극 돕겠다"던 컵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은 뒤 ML 무대를 갈망했다. 재활을 성공리에 마쳤음을 보여줘야 하기에 마이너리그서도 최선을 다해 던졌다.

그는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이었다"며 "사실 루키리그에서 바로 트리플A로 갈 줄 알았는데 싱글A, 더블A까지 다 돌리더라. 한편으로는 짜증도 났지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 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더 어린 나이에 왔다고 해도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빙빙 돌아왔지만 지금 온 게 내 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처음에는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는 생각도 들었지만 섣불리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며 "타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몸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했다. 굳이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지난 6월 25일 LA 에인절스 루키리그 팀을 상대로 첫 실전 등판을 가졌고, 71일 만인 지난달 5일 꿈에 그리던 빅리그 무대를 밟았다.

마이너리그서는 더 보여줄 게 없었다. 그는 루키리그는 물론 싱글A와 더블A에서 연일 호투하며 트리플A까지 초고속 승격했다. 마이너리그 성적을 합산하면 21경기에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61(22⅓이닝 4자책 7볼넷 24탈삼진). 피안타율도 1할 7푼 3리로 낮았다.

하지만 빅리그 진입은 생각보다 늦었다. 9월 확대엔트리 시행 이후에야 이뤄졌다. 임창용은 "사실 7~8월쯤 굉장히 (빅리그)욕심이 났다. 몸 상태도 좋았다"며 "마이너에서 이틀에 한 번 꼴로 경기에 나섰기 때문에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어깨가 아프더라. 그래서 조금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빅리그 데뷔전인 지난달 8일 밀워키전부터 6경기에서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5.40(5이닝 3자책), 5탈삼진 7볼넷이 임창용의 데뷔 첫해 기록.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그는 "6경기 모두 패전처리로 나갔다"며 "재활 경과를 점검하고, ML 타자들을 분석하기 위한 등판이기에 좋지 않은 성적에도 만족한다. 성적에는 연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올해를 '알을 깨는 아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의 경험을 토대로 내년 시즌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임창용은 "올해는 뜻대로 잘 안됐다"면서도 "한 시즌을 경험했기에 내년이 더 기대된다. 자신감도 더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첫째 목표는 마무리투수고, 둘째 목표는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내 성적이 얼마나 나오나 한번 보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임창용은 한국과 일본에서 18시즌 통산 296세이브를 따낸 산전수전 다 겪은 선수다. 그럼에도 아직 90마일 중반대의 빠른 공을 자랑한다. 한국 나이 38세로 다소 늦었음에도 빅리그 진출 꿈을 이룬 이유다. "심리적인 자극이 필요했는데 일본에 있었다면 자극이 부족했을 것이다. 새 환경에 나와 보니 모든 게 생소하고 새로웠다. 스스로 살 길을 찾으려고 했다"는 임창용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했던 그가 묵묵히 마이너리그에서 훈련을 소화했던 이유다.

고된 마이너리그 생활을 경험한 임창용은 후배들이 좋은 조건으로 빅리그에 진출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정말 ML에 도전하려면 국가대표 경험을 쌓고 좋은 조건으로 갔으면 좋겠다"며 "나는 루키리그부터 경험했다. 조건이 좋지 않고 기회도 부족한 편이다. 아예 좋은 대우를 받고 가는 것이 방법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임창용은 "새 감독이 누가 되든 내가 잘해야 한다"며 "스프링캠프 때 내 컨디션을 어느 정도 끌어올리느냐가 중요하다. 동계훈련 잘 소화해서 100%까지 올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100%가 되면 ML 타자들과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임창용, 그의 시선은 벌써 2014년을 향해 있다.

[마이너리그에서의 경험은 임창용에게 소중한 추억거리가 될 전망이다. 사진 = 마이데일리 DB]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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