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두父子의 우연과 필연…그건 숙명일까?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The Place Beyond the Pines)', 두 아버지와 아들의 우연과 필연…그것은 숙명일까?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루크(라이언 고슬링)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순회 공연하는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으로 '미남 루크와 훈남들'의 리더다. 전국을 떠돌며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는 뉴욕주의 스케넥터디에서 공연 중, 1년 전 잠시 만나 사랑을 나눴던 로미나(에바 멘데스)와 재회한다.

재회의 기쁨도 뒤로한 채 로미나는 1년 동안 소식조차 없었던 루크와 작별을 고하고 다음 공연지로 떠나기 전에 그녀의 집을 찾아간 루크는 로미나가 자신의 아들인 제이슨을 낳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아들 제이슨을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아버지 없이 불안정하게 자란 자신처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루크는 로미나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로미나는 그녀와 아들을 가족처럼 지키며 보살펴주는 새 연인(마허샬라 알리)을 떠날 수 없다며 거절한다. 하지만 결코 자신을 버린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루크는 당장 다른 곳으로 순회공연을 가야하는 모터사이클 스턴트맨을 그만두고 아들이 있는 스케넥터디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로미나와 아들 제이슨을 데리고 함께 사는 것이 꿈인 루크가 가진 것이라고는 모터사이클 한 대와 라이딩 실력 뿐, 루크는 일단 자동차 수리공으로 그곳에 정착하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한다.

전직 은행털이범인 자동차 수리점의 주인(벤 멘델슨)은 루크의 오토바이 실력과 재능을 간파하고 은행을 털자고 제안하지만 떳떳하게 살고자하는 루크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하루 빨리 돈을 마련해 가족을 찾아오겠다고 결심한 루크는 결국 라이딩 실력을 이용해 은행강도가 된다.

거친 숨을 내쉬며 유원지를 가로질러 오토바이를 타고 멤버들과 철로 만든 원형의 케이지에서 숨통 조이는 묘기를 펼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주인공 루크가 오토바이 스턴트맨이라 오토바이 묘기를 보여주는 익스트림 스포츠 영화로 지레짐작할 수 있지만, 아들을 부양하기 위해 생계형 범죄자가 되는 과정을 보면 은행털이 액션 범죄극으로 단정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오토바이 스턴트맨인 루크가 은행을 털다가 도망치던 중 경찰들의 추적을 당하게 되고 사살될 때까지 전개되는 오토바이 추격 장면은 어떤 액션영화 못지않게 긴박감 넘치는 카메라 워크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특히 자식을 위해 은행강도가 되는 설정은 니콜라스 케이지의 '스톨른'과 흡사하다.

하지만 루크가 자신을 쫓던 신참 경찰 에이버리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순간,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들은 시계를 보게 된다. "러닝타임 1시간이 채 안됐는데 주인공이 죽다니…"

그런 우려를 남기면서 이 영화는 자연스레 초점이 6개월 된 신참 경찰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에게 넘어간다. 아버지 없이 자란 루크와는 달리, 지역판사인 명사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란 에이버리는 아버지 길을 따르는 것보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정의를 실현 하려는 야망을 갖고 있다.

법대를 그만두고 경찰이 되어 자신의 커리어를 직접 쌓으려던 그는 겁에 질려 순간적으로 루크를 사살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총상을 입은 에이버리는 오히려 용감한 영웅으로 부각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사살한 루크에게 자기와 같은 어린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에겐 또 다른 범죄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같이 일하는 동료 형사들이 그를 비리에 끌어 들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영화의 방향이 액션 범죄극에서 부패한 경찰의 비리를 보여주는 경찰범죄드라마로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야심이 많은 에이버리가 진실과 정의보다 거짓과 타협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면서 이 영화는 15년 뒤로 점핑하고, 루크의 아들 제이슨(데인 드한)과 에이버리의 아들 AJ(에모리 코헨)가 우연히 같은 학교 친구가 되면서 두 세대에 걸친 비극적 운명, 즉 두 아버지와 두 아들의 우연과 필연이라는 숙명을 각인시킨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루크가 자신의 운명을 아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벌이는 범죄행각을 그린 첫 번째 이야기와 정의와 진실보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아버지의 길을 거부하던 에이버리가 진실 은닉과 타협으로 아버지의 길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두 번째 이야기는 15년 후, 우연하게 두 아들이 만나면서 반복되는 비극을 보여주는 세 번째 이야기로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 영화의 주제를 명백하게 각인시켜준다.

아들을 위한 루크의 범죄는 그의 아들 제이슨이 유산처럼 물려받게 되고 에이버리가 저지른 실수와 진실을 은닉하는 그의 내적 갈등은 다른 형태로 그의 아들 에이제이에게 유산처럼 넘겨진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서로 다른 장르를 접목하여 세 단계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그런 만큼 새로운 갈등구조는 없지만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궁금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흡인력으로 극적 긴장을 유도한다.

무엇보다 범죄 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모터사이클 스턴트맨과 신입 경찰의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15년 후 그들의 아들들에게 반복되는 비극적인 삶의 숙명을 그린 범죄 드라마로서 이 영화의 포인트는 범죄가 낳은 비극을 각인시키는데 있다.

어느 부부의 첫 만남과 결혼 6년차의 현실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가장 현실적인 러브 스토리인 '블루 발렌타인'으로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준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은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그 선택이 세대를 거듭해 어떤 식으로 되풀이되는지를 다루고 싶었다"라는 연출 의도처럼 두 남자의 비극적 만남과 15년 뒤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된 소년들의 반복되는 운명을 통해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세대를 거듭해 다양한 형식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익숙하고 전형적인 가족 소재를 사실적인 묘사와 특유의 감각적인 감성으로 가슴 먹먹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세밀한 디테일과 캐릭터의 힘을 보여주는데 있다.

루크 역의 라이언 고슬링은 '드라이브'와 '블루 발렌타인'에 이어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로 방점을 찍고 에이버리 역의 브래들리 쿠퍼와 제이슨 역의 데인 드한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또한 약자들을 등쳐먹는 부패한 경찰 역의 레이 리오타는 물론, 모든 조연들이 뛰어난 호연으로 이 영화를 탄탄하게 받쳐준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흔적과 유산을 찾아 떠나는 제이슨을 통해 죄의 본질과 증오의 근원, 그리고 화해와 용서를 곱씹게 하는 라스트 신은 '소나무 숲 너머 그곳'이라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의미를 긴 여운 속에 상기시켜준다.

화끈한 액션보다 감동으로 더위를 잊게 해 주는 이 영화는 놓치기 아까운 '두근두근 시네마'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 스틸컷. 사진 = 코리아스크린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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