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클리어링, 진갑용과 이택근에게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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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6일 목동 넥센-삼성전. 7-7 동점이던 7회말 1사 1루. 삼성 심창민이 넥센 이택근의 몸을 맞췄다. 이택근은 흥분했다. 삼성 포수 진갑용은 이택근을 말렸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몸 싸움이 일어났다. 그러자 양팀 선수들이 우르르 그라운드에 몰려나왔다. 벤치클리어링. 처음엔 험악했으나 이내 진정됐다. 넥센은 계속된 찬스에서 4점을 달아나며 승부를 갈랐다.

벤치클리어링. 말 그대로 벤치를 비우는 것이다. 야구에선 선수들이 벤치를 비우고 그라운드에 나와 대치 상태를 형성하는 걸 의미한다. 보통은 가볍게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앙금이 추후로 이어지거나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케이스도 있었다. “짧게 끝나는 건 야구를 보는 흥미거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 프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 추태만 벌이지 않는다면, 약간의 미묘한 신경전은 야구를 관람하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 이택근-진갑용, 액션을 취해야 할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이택근은 경기 후 취재진에게 동료들이 몸에 맞는 공이 많아서 예민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이날 양팀 모두 몸에 맞는 볼을 주고 받았다. 특히 삼성 선발 릭 벤덴헐크는 몸에 맞는 볼을 3개나 기록했다. 이후 심창민도 흔들렸다. 몸에 맞는 볼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넥센으로선 기분이 나쁠 수 있었다. 이택근으로선 뭔가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도 대응했다. 이택근이 마운드 쪽으로 걸어나가자 포수 진갑용이 저지했다. 진갑용이 미트로 이택근의 목을 치면서 두 사람의 감정이 격앙됐다. 진갑용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후배 심창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택근과 진갑용 모두 팀 대 팀의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일종의 액션 혹은 전략을 취했다고 보면 된다.

▲ 단순히 1경기로 판단해선 안 된다

벤치클리어링을 단순히 1경기서 감정이 격앙된 결과로 판단해선 안 된다. 사실 심창민은 5일 경기서 이성열의 팔꿈치를 맞히기도 했다. 이성열은 정밀검진 결과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넥센으로선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심창민이 또 다시 몸에 맞는 볼을 던지자 이택근과 진갑용이 차례대로 격앙된 것이다.

심창민의 몸에 맞는 볼이 빈볼인지 아닌지는 큰 의미는 없다. 빈볼은 어차피 해석하기 나름이다. 굳이 정황을 유추하면 박빙 승부에서 투구한 심창민이 빈볼을 던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삼성과 넥센이 직전 3연전서 특별히 앙금이 쌓이지도 않았다. 또 심창민은 제구력이 좋다. 단순히 손에서 공이 빠진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넥센은 이를 알고도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이택근이 나섰을 수도 있다. 진갑용도 마찬가지다.

한 야구관계자는 “벤치클리어링은 단순히 1경기만 봐선 안 된다. 메이저리그에선 빈볼에 대한 해석 차이로 오해가 생길 경우 다음 시즌까지 앙금이 이어질 수도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빈볼이 발생한 배경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다. 불문율에 대한 해석차이 혹은 기싸움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다만, 한국의 경우는 대부분 선, 후배 관계로 얽혀 있어 경기 후 곧바로 전화통화로 앙금을 푸는 편이다. 어지간하면 신경전과 앙금을 다음 맞대결까지 이어가지 않는다. 진갑용과 이택근도 고려대 선, 후배 사이다.

▲ 그라운드 대치 이후, 확실히 투수가 타자보다 불리하다

대부분의 야구인이 동감하는 부분.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 투수가 타자보다 훨씬 더 불리하다는 점. 투수는 벤치클리어링이 끝난 뒤에도 계속 공을 던져야 한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여유가 없이 다음 타자를 연이어 상대해야 한다. 투구 밸런스가 흔들릴 수 있다. 심창민도 이택근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진 이후 박병호에게 역전 결승타를 내줬고 강정호와 김민성에게 연이어 볼넷을 내줬다. 타자를 압도하는 피칭을 하는 심창민에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반면 타자는 루상, 혹은 벤치에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택근이 벤치클리어링을 이끌었다고 해도 다음 타석이 돌아오기까지 평정심을 찾을 수 있다는 뜻. 이택근은 실제로 다음 타석인 8회 무사 1,2루 찬스에서 우익수 키를 넘기는 1타점 2루타를 쳐냈다. 공교롭게도 벤치클리어링 이후 승부의 추가 넥센에 넘어갔다.

▲ 선-후배 의미없다, 외국인선수도 예외없다

선, 후배 관계가 엄격한 프로야구에도 벤치클리어링에선 예외다. 이택근은 진갑용의 대학 후배지만, 벤치클리어링 상황에선 기 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전 선수가 우르르 몰려나오면 기 싸움 차원에서라도 선, 후배 관계는 잠시 잊고 대치해왔다. 벤치클리어링에 참가하지 않는 선수는 구단내규에 따라 페널티를 받기 때문. 또한, 개인의식이 강한 외국인선수도 더욱 적극적으로 대치에 나선다. 국내선수의 감정싸움에 외국인선수가 더 흥분한 경우도 많았다.

그라운드에 대치한 선수 모두 치고 박고 싸우자는 의지를 보이는 건 아니다. 몇몇 선수가 감정이 격앙되면 그 옆에서 말리는 선수가 더 많다. 상대 선수와 대화를 통해 웃으며 좋게 푸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 코치들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간 뒤 천천히 그라운드에 걸어 나온다. 그러나 감독들은 그라운드에 나오지 않고 덕아웃을 지키는 편이다. 때문에 벤치클리어링이 사실은 벤치클리어링이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넥센-삼성 벤치클리어링 장면. 사진 = 목동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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