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조', 배금주의에 대한 노익장의 섬뜩한 고발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킬러 조', 막장 가족의 보험사기극…배금주의에 대한 노익장의 섬뜩한 고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총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고 한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어둠을 가르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폭우 속을 달리던 자동차가 컨테이너 박스 앞에 멈춘다.

개 짖는 소리가 폭우와 어우러져 위기감을 조성하고 차에서 내린 청년이 다급히 "도티"를 부르며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지른다. 한참이 지나서야 잠을 자던 여인이 문을 열고 청년을 맞이한다.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집에 들어선 청년은 내복도 입지 않고 음모를 드러낸 여인에게 하의를 입으라고 핀잔을 주고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기를 드러내고 집안을 돌아다닌다. 잠을 깬 중년 남자가 여인에게 옷을 입으라고 소리친다.

청년의 이름은 크리스(에밀 허시)이고 문을 연 중년여인은 그의 계모인 샬라(지나 거손)이다. 그리고 중년 남자는 크리스의 아버지 안셀(토머스 헤이든 처치)이다.

어둠을 관통하는 총성, 그리고 천둥과 번개, 이어지는 폭우와 개 짖는 소리로 극단적인 긴장감을 일으키면서 시작되는 '킬러 조'는 70대의 노장인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2011년 작품으로 제 68회 베니스영화제 골든마우스상을 수상한 범죄 스릴러다.

거침없는 폭력묘사와 명배우들의 과감한 노출연기로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호불호로 갈리는 평과 논란 속에서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어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이 건재함을 입증했다.

1967년 첫 번째 장편 '굿 타임스(좋은 시절)'로 데뷔한 프레드킨 감독은 32세가 되던 1971년 마약조직을 섬멸하는 뉴욕 시 형사 뽀빠이의 무용담을 그린 '프렌치 커넥션'으로 제44회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남우주연상(진 핵크먼), 각본상, 편집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뛰어난 편집과 부패한 도시를 바라보는 서사적 시각은 물론, 과거의 전형적인 형사물의 연출방식을 뒤집고 타협하지 않는 비관적 결말을 보여준 '프렌치 커넥션'의 명장면은 열차와 함께 달리면서 벌이는 자동차 추격 장면으로 '벤허'의 마차 경주 장면과 비견되는 명장면으로 각인되었다.

1973년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소설을 바탕으로 공포영화 역사상 최초의 메이저 블록버스터인 '엑소시스트(The Exorcist)'로 심령영화의 진수를 보여준 프레드킨 감독은 '알 파치노의 광란자', '딜 오브 컨트리', '람페지', '보이즈 인 더 밴드', '가디언' 등 매작품마다 상식을 뛰어넘는 쇼킹한 소재와 연출기법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작품성과 흥행 면에서 '프렌치 커넥션'과 '엑소시스트'를 능가한 작품은 없었다.

프레드킨 감독 특유의 서스펜스에 최첨단 특수효과를 더하여 공포영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은 '엑소시스트'는 "광범위한 관객을 대상으로 역겨움을 대중적 오락의 하나로 확립했다"는 한 평론가의 평처럼 구토와 기절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호러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수많은 아류작을 양산하였다.

제 46회 아카데미 작품, 감독, 여우주연, 남우조연, 여우조연. 미술감독, 촬영, 편집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각본상과 음향상을 수상한 '엑소시스트' 이후, 프레드킨 감독은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평론가들의 혹평과 흥행부진으로 국내에선 한물 간 감독으로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나 TV프로그램을 만들다가 2000년 '롤스 오브 인게이지먼트', 2003년 '헌티드'를 연출하여 영화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다시 보여준 그는 2006년 칸 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2011년 '킬러조'가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조직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고 살해위기에 처한 크리스는 여동생 도티(주노 템플)와 아버지 안셀, 그리고 새어머니 샬라가 살고 있는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집으로 찾아간다. 친어머니가 보험에 든 사실을 알게 된 크리스는 친어머니가 죽게 되면 여동생 도티에게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얘기를 듣고 궁여지책으로 자기아버지에게 친어머니를 죽이고 보험금을 나누자고 설득한다.

가난에 찌든 아버지는 크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크리스는 경찰이지만 부업으로 청부살인을 하는 킬러조(매튜 매커너헤이)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하지만 선불을 요구하는 킬러조에게 줄 돈이 없는 크리스는 일이 끝나면 돈을 주기로 하고 대신 킬러조는 초등학생 수준의 정신 연령을 가진 크리스의 여동생 도티의 순수함에 반해 그녀를 담보로 삼는다. 도티를 담보로 삼은 킬러조는 도티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갖고 크리스와 도티의 생모를 살해한다. 그러나 서로의 욕망과 배신, 사랑이 뒤엉켜 그들은 파멸로 치닫는다.

오프닝 신에서 내의도 입지 않고 음모를 드러낸 채 거리낌 없이 크리스에게 문을 열어주는 새엄마의 자유분방한 행동만으로도 기본적인 도리와 예의마저도 찾아보기 힘든 막장 가족을 암시하는 이 영화는 노출을 비롯한 잔인한 폭력장면과 수위 높은 장면들 때문에 19금 성인 범죄스릴러 영화로 각인되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우선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돈 때문에 자신의 부인이자 어머니를 죽이자고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하고 오빠는 돈 때문에 어린 여동생을 살인청부업자한테 넘긴다. 법을 수호해야 할 경찰은 돈 때문에 청부살인을 부업으로 하고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는다. 또 새엄마는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진다.

그들은 법적으로만 가족이지 가족 간의 사랑은 발견할 수 없고 친어머니를 죽이거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지는 데 대해 죄책감은커녕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런 만큼 그들에겐 근친살해에 대한 갈등이나 고민조차 없다. 오로지 중요한 건 돈 밖에 없고 윤리적인 갈등이나 휴머니티는 눈곱만큼도 없다.

엄마의 죽음을 바라는 가족과 엄마의 죽음을 위해 돈 대신 담보로 잡힌 매혹적인 여동생 도티. 이 영화에서 그래도 순수함을 보여주는 어린 도티 역시 킬러조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것을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성관계를 갖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막장 가족의 보험 사기극을 통해 존재 가치마저 사라진 가족이라는 이름의 누더기 초상으로 배금주의에 대한 노익장의 섬뜩한 고발이다. 그런 만큼 이 영화는 악령 들린 소녀를 그린 '엑소시스트'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단지 여기에선 악령이 아니라 돈 들린 가족의 막장 스토리로 인간 욕망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면서 배금주의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킨다.

첫 장면부터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면서 거침없는 표현으로 충격을 부각시키는 이 영화는 그런 만큼 역겨움을 대중들의 오락으로 확립 했다는 '엑소시스트'처럼 보기에 역겹고 불편하다. 특히 킬러조가 치킨 다리를 샬라의 입에 넣고 성행위를 흉내 내는 장면과 킬러조에게 폭행당한 샬라가 태연하게 가족끼리 식사를 하자는 킬러조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고 피를 그냥 물로 씻어내고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은 충격 그 이상으로 섬뜩하다.

매튜 매커너헤이와 지나 거손, 주노 템플의 몸 사리지 않는 전라연기와 도발적인 영상이 충격적인 이 영화의 결말은 어둠 속의 총성으로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줬던 '프렌치 커넥션'의 마지막 장면과 궤를 같이하면서 오프닝 신의 총성과 연결된다.

트레이시 레츠의 동명희곡이 원작인 이 영화는 단촐한 캐스팅에 단순한 줄거리지만 뛰어난 극적 재미와 극적 긴장감으로 윌리엄 프레드킨의 전성기를 곱씹게 한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킬러 조' 스틸컷. 사진 = 도키 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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