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리, 무형문화재가 꿈이었던 그녀의 배우되기(인터뷰)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지난해 배우 김고은이 신인여우상을 독식했을 때 아마도 매 시상식마다 근소한 차로 신인여우상을 놓쳤을 또 다른 혜성같은 이가 있었다. 바로 한예리(29)다.

이미 독립영화계에서는 뮤즈로 불리었던 이 여배우는 영화 '코리아'에서 선배인 배두나, 하지원에 눌리지 않고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강단이 있었다. 뒤이어 출연한 '남쪽으로 튀어'에서 그는 신인에게는 어마어마한 선배 김윤석으로부터 극찬을 들었다.

스크린 속에서 그녀는 관객의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다. 화려한 외모는 아니지만 여백이 많은 얼굴은 다양한 그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만든다. 게다가 뽀얗고 맑은 그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배우로서는 참 행복할 법한 매력이다.

이런 한예리의 배우 데뷔는 꽤 인상적이다. 누군가는 '운명'을 떠올리 법한 그런 이야기. 국립국악중고등학교를 나와 한예종 한국무용과에 들어간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배우가 됐다. 스스로도 배우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제 자신이 대단한 무용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웃음).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어

보면 늘 무형문화재라고 이야기 했었어요. 다시 태어나더라도 무용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 정말 무용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죠. 무용 외에는 잘 하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었어요. 그런 제가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절 아는 친구들도 다 깜짝 놀랐을 거예요."

무용수를 꿈꾸던 한예리는 더 이상 자라지 않은 키 때문에 교육자의 길을 검토해야 했다. 따라서 창작무용보다는 전통무용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전통예술의 커리큘럼이 탄탄한 한예종으로 진학하게 됐다. 이후 뮤지컬과 영화 등에서 배우의 안무 트레이닝을 맡아 하다가 영화 출연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처음 대사를 포함한 연기를 하게 된 것은 영화 '기린과 아프리카'(2007). 그 때만 해도 대단한 결심을 가지고 '배우가 돼야지'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그러나 이 영화로 한예리는 꽤 주목을 받게 됐다. 무용을 하면서는 받기가 그토록 힘들었던 상도 단 번에 탔다.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연기부문)을 받았던 것이다.

"잘 모르고 시작했어요. 영화 한 편이 어떤 여파를 몰고오거나 어떤 큰 힘을 갖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그때는 마냥 좋아 재미있게 했었죠. 다만 영화라는 장르 자체가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을 했었죠. 겁이 났던 것은 처음 상을 받고나서 부터였어요.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할거냐, 연기를 계속 할거냐, 무용은 그만 할거냐, 영화를 할 거면 회사에 들어가서 할거냐'라며 여러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당황했죠. 전혀 그런 생각을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때서야 '내가 뭘 한거지'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 이제 무용은 못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었고. 복잡해지면서 무서워졌어요."

결국 흘러흘러 그녀는 배우가 됐다.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운명이라고 할 밖에 도리가 없는데 스스로는 흘러가는 대로 담담히 발맞춰 왔을 뿐이라고 했다.

"글쎄요. 운명은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예요. 영화를 할 때도 계획을 하기보다는 흐르는대로 시나리오도 들어오는대로 보면서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요. 그렇게 가다보면 파도에 배가 쓸려가듯 어디론가 가고는 있을테고 어딘가에는 닿을테죠. 정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도 저는 계획을 세우거나 작정을 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즐겁게 작업을 하고 싶어요."

한예리는 최근 영화 '동창생' 촬영도 마쳤다. 그녀로서는 처음으로 또래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췄다. 풋풋한 얼굴에 피어날 어떤 생기가 기대된다.

[배우 한예리.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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