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찌질해도 이렇게 찌질할 수가 없다.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알고 보면 스토커다. 옛 애인인 여대생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잊지 못해 수시로 전화하고 찾아간다. 그런데 이 남자, 이 모든 것이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영화 '분노의 윤리학'에서 현수 역으로 분한 김태훈은 나쁜 놈, 잔인한 놈, 찌질한 놈, 비겁한 놈 그리고 제일 나쁜 여자 중 찌질한 놈을 맡았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찌질할지 모르지만 그 스스로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편단심 외사랑이다.

이런 현수 역을 김태훈은 제 옷처럼 소화해 낸다. 전작 '남쪽으로 튀어'에서도 찌질한 선생님으로 나오더니, 이런 역이 체질인가보다. 하지만 또 그 전의 작품을 생각해 보면 악역이 딱이지 싶다.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에서 일명 '안변' 안민영 변호사로 등장해 사랑을 위해서라면 거칠 것 없는 나쁜 남자 모습을 선보였다.

김태훈은 "뻔한 대답일 수 있지만 다 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진폭이 큰 인생이면 그만큼 묻어나오는 게 많은 것 같다. 없는 걸 억지로 꾸며 내는 게 좋은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다 내 모습만은 아니다. 현실과 허구를 잘 섞어야 하는데 얼마만큼 잘 섞어서 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착한남자' 안민영도 나의 모습이고 '분노의 윤리학' 현수도 나의 모습이다. 그래서 애정도 가고, 농담식이지만 '나(극중 배역) 괜찮은 놈 아니에요?'라고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악역이 잘 어울린다는 말도 감사하다. '얼굴이 변한다'고 말해 주는데 그런 말들이 정말 고맙다. 배우 김태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역할마다 그 인물로 봐주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나에 대해 기억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인물만 기억해 주면 배우로서 더 바랄 게 없다"고 겸손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김태훈은 '분노의 윤리학' 촬영장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헤엄쳤다. 김지운 감독의 연출부를 거쳐 이번 영화를 통해 데뷔한 박명랑 감독은 그가 헤엄칠 수 있는 공간을 더 넓혀준 인물이다. 김태훈 스스로도 촬영현장이 각별했다고 느낄 정도였다. 여기엔 영화를 위해 의기투합한 스태프들, 같은 소속사 식구들인 출연배우들이 만든 현장 분위기도 한 몫을 했다.

그는 "촬영현장이 편안했다. 우리 회사 배우들이 출연했다고 해서 과도하게 으?X으?X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서로 편안해 하면서도 그 안에 힘이 느껴지는 현장이었다"며 "감독님이 신인 감독님인데 굉장히 편안하게 이끌었다. 배우들을 자유롭게 하면서도 자기 생각이 명확했다. (배우들이 연기할 때 신경 쓰이지 않도록) 스태프들도 어디서 찍는지 모르게 해주더라. 연기를 할 때 그런 게 제일 편안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감독님이 부족한 것들을 말없이 보완하며 진두지휘했다. 수장으로서 능력이 출중한 것 같다. 굉장히 즐거웠던 작업이다"고 회상했다.

그래서인지 '분노의 윤리학'은 배우 김태훈에게 의미 있는 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자신에게 즐거운 경험을 안긴 것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영화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태훈은 "내가 했던 작품 모두가 다 소중하지만 그 중에서도 의미 있는 영화다. 무엇보다 소재나 접근방식, 영화의 색깔이 독특하다. 다른 색의 영화가 많아야 관객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데 그것에 일조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이 보고 좋아해 주시면 이런 영화들이 더 많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또 군입대 중인 이제훈에 대한 메시지도 전했다. 최근 영화 관련 일정들을 소화하며 같이 호흡을 맞춘 이제훈이 유독 생각났다는 것.

그는 "물론 같이 있으면 좋을 것"이라며 "같이 고생했다. 막내고 귀염둥이다. 얼마 전 제훈이 생각이 나더라. 내가 누구에게 잘 전화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제훈이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몸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하다. 몸 건강히, 사고 없이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휴가 나와서 연락해라. 그럼 맛있는 걸 사줘야겠다"고 덧붙였다.

김태훈의 애정이 물씬 느껴지는 영화 '분노의 윤리학'은 미모의 여대생 살인사건에 나쁜 놈, 잔인한 놈, 찌질한 놈, 비겁한 놈 그리고 제일 나쁜 여자가 얽히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찌질한 놈 현수 역을 맡은 김태훈 외에도 군복무 중인 이제훈이 나쁜 놈 정훈, 조진웅이 잔인한 놈 명록, 곽도원이 비겁한 놈 수택, 문소리가 제일 나쁜 여자 역으로 출연했다.

[배우 김태훈.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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