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 "내가 뭐라고 날 좋아하는지…"(인터뷰)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1대1 인터뷰로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영원히 내가 괜찮지 않다고 믿고 있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생계 때문에 괜찮은 척 하는구나'. 그 무게감을 지우고 싶었다. '나 정말 괜찮습니다' 그걸 알리고 싶었다. 물론 처음에는 싫었다. 과거와 관련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 하지만 오히려 인터뷰를 하고 나니까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아있던 것들이 많이 없어진다"

부담스러운 인터뷰였다. 개그우먼 정선희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정선희가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물어서 도리어 정선희의 상처를 후벼 파는 것은 아닌지 이것저것 고민이 깊었다.

인터뷰는 정선희의 소속사 코엔스타즈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매니저를 옆에 앉히고 질문과 답변의 수위를 조절하는 연예인들과 달리 정선희와의 인터뷰는 단 둘이서 1시간 가량 이어졌다.

그리고 정선희의 이야기를 몇 글자 받아 적다가 노트북을 닫기로 결심했다. 엄정화, 홍진경 등 절친들과 샴페인에 안주로 수육과 회를 먹었다며 즐거워하는 정선희는 솔직했고, 때로는 정선희에게 오히려 인생상담을 부탁하고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1시간 동안 그저 그런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친한 친구와의 대화처럼 웃다가 끝난 인터뷰였다.

"'우리들의 일밤'의 후배들이 내게 '언니 무서울 줄 알았어요'라고 했다. 사실 난 생각보다 만만하다. 약간 허술한 것 같기도. 내 첫인상이 강하고, 왠지 눈빛이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다고들 한다. 그런데 막상 같이 지내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만만하게 날 대하더라"

이틀에 걸쳐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몰아서 했던 정선희에게 매번 같은 말을 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난 기억력이 안 좋다. 인터뷰 때 했던 말들, 나도 잘 기억이 안 나니까 또 물어봐도 된다. 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농담을 던지던 정선희는 "그래서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기억 나지 않는 게 몇 개 있다"며 "다 담아갈 수는 없다. 새로운 걸 담아야 사니까. 그렇게 과거에 연연할 만한 좋은 머리는 못 된다"고 말했다.

강한 여자였다. 아마 세월이 정선희를 더 강하게 만들었으리라.

"라디오(SBS 파워FM '정선희의 오늘 같은 밤')로 용기를 많이 얻었다. 사건들이 터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라디오로 복귀해서 더 욕을 많이 먹었다. 사실 그 때는 '너무 이르다'란 생각의 정리가 안 될 때였다. 하지만 라디오를 하면서 나 스스로도 치유를 받았고, 용기도 얻었다. 아군이 생긴 느낌이었다"

정선희는 인터뷰 중 영화 '언터처블'을 봤냐고 물어왔다. 아직 안 봤다고 했더니 영화 줄거리를 한참 소개했는데, 듣고 보니 정선희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신불구인 백만장자 남자와 가난한 백수 남자의 우정에 관한 내용이다. 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 영화가 너무 시크했다. 내가 원하는 게 그거다. 어떤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고 주저 앉았을 때, 그 사람에 대한 걱정과 우려는 당연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사람에게 제일 좋은 위로는 '밥 먹었어?', '옷 예쁘다' 이런 평범한 단어다. 그런 말들을 고파한다. 그 영화도 그랬다. 가난한 남자는 전신불구인 남자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대한다. 계속해서 옛 기억을 끄집어내게 하는 건 그 사람을 위로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을 위로하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거다.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평범한 단어로 말을 건네주는 게 최고의 배려고 위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람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길 바라는 것이다"

정선희의 복귀나 대중과의 교감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던 건 정선희가 배우나 가수가 아닌 개그우먼이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남들에게 웃음을 줘야만 하는 정선희,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정선희가 스스로 힘들면서 그 속내를 숨기고 억지로 즐거운 척 또 재미있는 말을 하려 애쓰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제 난 괜찮다'란 것을 인터뷰나 방송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밖에 없다. 물론 나 자신도 아직 열려있지 않은 부분들은 조심한다. 예를 들어 남자 출연자들한테 집적거리는 리액션 같은 것들이다. 내가 아직 자연스럽지 않은데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날 지켜보시는 분들이 하나 둘씩 '이제는 괜찮다'고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봐주실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릴 것이고, 난 내 길을 갈 것이다"

강한 여자 정선희도 아직은 인터넷 댓글을 보는 건 어렵다. 대신 주변에서 '악플'과 '선플'의 비율이 몇대몇 정도인지 알려준다고 한다.

"내 인터뷰 기사를 보는 것도 두세 번 망설여진다"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시간들을 이 악물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정선희의 곁을 떠나지 않고 응원해주는 팬들 덕분이다.

"영국 런던에서 유학중인 학생이 돈 아껴서 나 먹으라고 초콜릿, 홍차 같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온다. 한 의사 선생님은 원래 날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한다. 내 라디오를 듣다가 '저 여자는 뭐가 좋아서 웃지?'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 라디오를 계속 듣게 됐고, 환자들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내 말투를 따라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환자들이 좋아했단다. 원래 그 의사 선생님이 까칠해서 환자들도 어려워하고, 그래서 의사 선생님도 외로우신 분이었는데, 내 라디오 때문에 사람들과 관계도 좋아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게 고맙다며 어떤 날만 되면 나랑 내 스태프들 것까지 챙겨서 음식을 잔뜩 보내주신다"

정선희는 자신의 팬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게시판 워리어'도 한 분 있다. 내게 어떤 사건이 생기면 라디오 인터넷 게시판이 욕설로 도배돼 마비가 될 정도다. 그 때 홀로 다른 네티즌들이랑 꿋꿋이 싸우는 분이 있다. 심지어 내가 나온 TV 프로그램 게시판들까지 찾아 다니면서 악플러들과 외롭게 싸워주신다. 또 마트에서 캐셔를 하는 친구가 있다. 명절 때만 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선물을 들고 찾아온다. 그 친구가 얼마를 버는지 아니까 받고도 가슴이 아프다. 내가 이제 그만 해도 된다고 안 받겠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친구는 날 만나러 오는 발걸음이 즐거울 것이고, 내가 그 친구가 얼마 못 번다고 안 받으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것이더라. 받을 때 마다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난다"

"정말 뜨거운 팬들이다. 날 지탱해주는 팬들. 난 원래 시상식에서 배우들이 팬클럽에게 감사하다고 하면 뻔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사실 지칠 때가 많다. 나와의 싸움도 힘들고 다른 이들과의 싸움에 지쳐있을 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오로지 나만 봐주는 팬이 있다는 건 무진장 힘이 된다. 대체 내가 뭔데? 내가 뭐라고 날 좋아해주는지. 내가 아주 예뻐서 그들의 이상형인 것도 아니고, 단지 동네 언니 같을 뿐인데, 날 그렇게 챙겨주는 팬들이다. 정말 그들에게 표현해주고 싶다. 어려울 때 같이 고비를 넘긴 팬들에게 내 마음을…"

정선희는 "나는 길치다"라고 했다. 길치인 정선희는 오랜 시간 천천히 길을 찾고 있다. 고립되고 어둠뿐인 곳에 홀로 주저앉은 듯 했지만 정선희는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한 걸음씩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개그우먼 정선희. 사진 = 코엔스타즈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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