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야구장 철거의 나비효과에 멍든 목동야구장 [MD에세이]

동대문야구장 철거의 나비효과에 멍든 목동야구장-정우영

9월17일,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예정된 목동야구장. 갑자기 외야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두산 선수 몇몇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뭔가를 확인한 김광수 코치가 다급히 홍원기 코치를 불렀다.

“홍 코치! 빨리와서 여기 좀 봐봐요.”

우중간 펜스에서 10m정도 앞쪽에 둘레 약 30cm의 발목정도 깊이로 작은 웅덩이가 파였던 것이다. 홍 코치는 시설관리요원에게 보수를 요청했고 구장은 긴급수술에 들어갔다. 움푹한 부분을 먼저 십자로 가르고 그 곳을 메워서 다진 후 인조잔디로 봉합했다.

“섬뜩했죠. 딱 발목 깊이였어요. 만약 두산 선수들이 스트레칭하면서 그걸 발견 못했으면 누군가는 경기를 하다가 영문도 모르고 거기서 부상을 당할 뻔 했습니다.”홍 코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목동구장은 여기저기가 멍들어있다. 그렇다면 대체 왜 프로야구 프랜차이즈의 홈구장인 목동구장이 이렇게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일까?

2007년 12월 18일. 동대문운동장의 철거가 시작됐다. 야구, 축구, 육상 등 다양한 종목 스포츠인들의 반대시위와 유력인사 100인의 철거반대 선언문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동대문운동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심지어 지하철 동대문운동장역도 이제는 이름조차 생소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 된지 오래다.

동대문운동장 특히 그중 야구장과 관련해 서울시는 대체구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 ‘대체’의 의미가 대체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들다. 동대문구장 철거당시 2010년 완공을 약속했던 서울 고척동야구장은 돔으로 변경 후 2011년 말에서 2012년 초까지 완공 예정기한이 밀려났다.

그 와중에도 시의회의 반대를 포함한 계속된 진통을 겪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언제 야구장이 지어질지 기약할 수 없다. 이미 완공된 신월야구장과 구의야구장은 아마야구와 학생야구의 메카였던 동대문구장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팬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경기만을 치르기 위한 간이야구장이기 때문이다.

구의야구장은 400명의 관중이 1루 측에만 입장가능하고 그마저도 철제 기둥으로 인해 관중의 시야확보가 쉽지 않다. 신월야구장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없는 선진국형 야구공원을 표방했지만 공원의 기능을 너무 강조해서인지 단 300명의 관중만을 수용할 수 있다. 이런 간이야구장에서 아마추어 선수권대회를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해 몇몇 대학, 중학대회들이 신월에서 열리기는 했으나 대회의 ‘주’무대는 어디까지나 목동구장이었다.

바로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목동구장은 야구시즌 내내 아마야구대회의 주무대이자 프로야구 프랜차이즈의 홈구장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목동에서 진행된 대회는 2010 마구마구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홈경기 67경기를 제외하고도 3개의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포함하여 무려 10개 아마추어 대회가 진행됐다. 아래 표는 대한야구협회의 서울지역 아마추어 대회일정이다.

대회 진행일만 따져도 122일, 그리고 이 표에는 포함이 되어있지 않은 KBS 고교야구 최강전(이 기간은 9월 4일~11일로 대학야구선수권대회와 겹친다) 역시 목동구장에서 열렸다.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의 특징은 단기간 많은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일단 목동에서 진행된 3대 고교야구 전국대회만 봐도 그렇다. 결승전이 잠실에서 진행된 황금사자기의 경우 3월 12일부터 28일까지 17일동안 무려 50경기가 목동에서 진행됐다. 대통령배는 4월 26일부터 5월 5일까지 열흘간 26경기, 청룡기는 5월 18일부터 26일까지 9일간 25경기가 열렸다. 경기수를 기간으로 나눠보면 하루에 두 경기 혹은 세 경기 정도지만 올해는 대회 기간동안 이상기후로 인해 경기를 치르지 못한 날이 많았고 그러면서 하루내내 4경기를 치른 날도 수 차례 있었다.

인조 잔디구장에서 단기간 많은 경기를 소화할 경우 가장 우려되는 것이 경기장의 노화다. 2010년 11월 5일, 넥센 선수들이 마무리훈련을 마친 직후 찾은 목동구장에서는 벌써부터 노화의 기운이 여기저기서 감지됐다. 그라운드의 상태와 관련하여 넥센 홍원기 수비코치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목동구장 2루 베이스 경계면. 흙과 인조잔디의 경계면이 모호할 정도다>

정우영(이하 정) : 아마야구대회가 목동에서 열리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뭔가요?

홍원기(이하 홍) : 일단 원정기간이 길다는 거죠. 올해는 2주 원정이 여러차례 있었어요. 그런데 그거야 또 그만큼 나중에 길게 홈경기를 치르니까 상쇄 된다고 쳐도 돌아오면 그라운드 적응이 쉽지 않아요. 워낙 단기간에 많은 경기를 치르니까요.

정 : 내야가 많이 상한 것 같은데요?

홍 : 특히 3루와 2루가 심해요. 그쪽으로는 계속 슬라이딩을 하니까 이게(흙) 점점 인조잔디 쪽으로 밀려나는거죠. 이쪽에 와서 보세요.(2루쪽 흙과 잔디의 구분지점) 흙과 인조잔디의 구분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여기랑 저쪽 3루쪽은 거의 맨땅입니다.

정 : 저기 3루 쪽이 올해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길민세 선수가 부상을 당한 곳이잖아요.

홍 : 나중에 저도 봤어요. 아무튼 그라운드로 인해서 경기가 뒤집혔고 지금은 그 선수 상태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그 길민세라는 유망주의 인생도 180도 바뀔 수 있으니 참 안타깝죠. 올해 우리팀 강정호도 유독 실책이 많았잖아요. 왜 그랬는줄 아세요?

정 : 왜죠?

홍 : 올해 정호의 거의 모든 실책이 2루 베이스 쪽을 향하는 타구에서 나왔습니다. 정호는 그쪽이 딱딱한 맨땅인걸 아니까 몸이 겁나서 그리로 못가요. 글러브만 따라가고. 무의식중에 그게 머리에 입력된거죠.

정 : 경기장 관리의 문제인걸까요?

홍 : 아무리 관리를 하려해도 경기가 너무 많으니 어쩔 수가 없죠. 사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마사토를 다시 보충을 해주고 그걸 다지고 물을 뿌리는 과정을 거쳐야하는데 곧바로 다음 경기가 이어지니까 일단 물을 뿌리고 라인만 다시 긋는 정도만 할 수 밖에 없거든요.

정 : 보세요. 손가락이 푹 안들어가요. 필드터프사의 인조잔디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구장들은 대부분 손가락 하나가 거의 들어가는데 지금 이 목동은 한마디도 다 안들어가네요.

홍 : 여기 경기장은 지금 세 살인데... 확실히 그라운드 나이는 그것보다는 더 들었어요.

누군가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내년시즌 고교야구 주말리그제가 도입되면 목동구장이 조금은 부담을 덜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 하지만 앞선 표에서 확인 할 수 있듯 목동에서 개최되는 아마추어 대회일정에서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또 대한야구협회의 ‘고교야구 주말리그 개요’에 따르면 일정 중 토너먼트 형식의 전,후반기 왕중왕전도 포함이 되어있다. 결국 목동에서의 토너먼트 대회는 세 개의 대회에서 두 개의 대회로 단 하나만 줄어든다는 말이다.

넥센은 지난 3년간 목동에 많은 공을 들였고 추후 고척동에 어떤 형태의 야구장이 완성되건 목동을 지키는 것으로 내부방침을 정하고 있다. 심지어 시의 허가만 나면 보스턴 펜웨이파크(도로에 인접해있는 좌측담장이 우측에 비해 짧은 반면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펜웨이파크의 좌측담장은 Green Monster로 불린다)를 롤모델로 한 국내 최초의 비대칭구장으로의 변경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마야구가 함께 진행이 되는 현재의 조건으로는 비대칭구장이란 요원한 이야기이고 - 기본을 중시해야하는 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비대칭구장에서 치르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 설령 변경허가가 난다고해도 지난 태풍 곤파스 때 쓰러진 그물망을 두 달이 넘은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수하지 않고있는 특유의 느린 행정 처리속도를 고려할 때 허가 이후 실제 개조에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다.

동대문구장이 사라졌다. 그곳을 대체할 구장은 말 그대로 경기를 치를 장소만 있을 뿐이고 아마야구의 새로운 메카가 될 야구장의 완공은 지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을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상위에서는 돔구장이 지어졌다 엎어졌다를 수없이 반복하고 지자체장들은 선거가 다가왔을 때만 입으로 야구장을 세운다.

<사진. 넥센 구장은 검지 손가락 한마디만 들어갈 정도로 인조잔디가 딱딱한 상태다>

그 와중에 이와 관련된 피해는 넥센이 저조한 성적이라는 결과로 고스란히 덮어쓰고 있다. 최상의 환경에서 경기를 치러야할 프로구단이 대회 하나가 끝날 때마다 급격히 노쇄해지는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정한 경쟁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넥센이라는 특정구단이 이런 피해를 입어야할 이유도 없다.

훈련후 개인러닝을 하던 한 선수가 잠시 멈춰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주말이면 공을 못 만져요. 사회인 야구대회가 오전부터 오후까지 있어서 저희 팀 주말 스케줄은 토요일 웨이트트레이닝, 일요일 휴식입니다.”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그의 뒷모습이 쓸쓸해보였다.

※ 이와 가장 비근한 예로 이웃나라 일본의 프로팀 한신 타이거즈가 치러왔던 ‘지옥의 원정’이 있다. 고교야구 여름 갑자원 기간 중 약 한 달 동안 홈구장인 고시엔구장을 비우고 원정여행을 떠났던 것. 그러나 지옥의 원정도 과거가 됐다. 이제는 그 기간동안 지옥의 원정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사카 교세라돔을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일본의 고시엔구장 관리는 철저하다. 패한 팀 선수전원이 인사를 마치자마자 펑펑 울며 야구장의 흙으로 모래주머니를 만들어가는 모습은 일본고교야구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 하지만 그렇게 흙을 아무리 퍼가도 다음 경기가 시작될 때면 어느덧 특유의 시커먼 고시엔 흙이 마치 새 경기장처럼 보충 되어있다. 90년이 다되어가는 고시엔구장이 지금도 일본팬들에게 ‘야구의 성지’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철저한 관리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신은 극도로 부진했지만 한신 선수들은 절대 ‘지옥의 원정’을 부진의 이유로 핑계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넥센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 정우영-2003년 MBC ESPN 입사, 현재 MBC SPORTS+캐스터. 프로야구, 프로농구 담당.

한상숙 기자 sk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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