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1987’은 30년의 세월이 지나 찾아왔다. 30년은 이 영화와 정치 현실이 숙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1987’을 보는 것은 온 몸이 뜨거워지는 전율의 함성을 듣고, 체험하고, 기억하는 일이다. 당시 광장에 모였던 100만 인파가 목놓아 외쳤던 ‘그날’에 ‘1987’을 관람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온 몸을 바쳐 자신을 희생했던 열사와 시민의 헌신적 삶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고, 독재와 불의에 맞서는 민주와 정의의 도도한 물줄기가 여전히 힘차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 군이 경찰의 가혹한 고문을 받고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처장(김윤석)이 화장을 지시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로 축소발표했던 경찰은 언론이 ‘물고문 도중 질식사’를 보도하자 조반장(박희순) 등 형사 둘만 구속시키고 위기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한병용 교도관(유해진)이 조카 연희(김태리)를 통해 수배 중인 재야인사에게 조작사실을 알리면서 민주화의 불꽃이 타오른다.
2003년 전설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로 두각을 나타냈던 장준환 감독은 필생의 역작을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영화적 재능에 가슴 뜨거운 열망을 더해 1980년대의 위대한 시대상을 조각했다.
다큐멘터리에 버금가는 정확한 자료조사로 생생한 리얼리티를 살려내고, 고문치사를 은폐하려는 정부와 이를 파헤치려는 양심적 시민세력의 피말리는 대결을 시종 팽팽하게 그려냈다. 검사, 교도관, 기자, 재야인사, 시민, 대학생 등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촘촘하게 맞물려 들어가며 펼쳐내는 강렬한 드라마가 격랑을 이루며 굽이친다.
남영동 차가운 물 속에서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뒀던 1월부터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세상을 떠난 6월의 민주항쟁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를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한편,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연희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시위현장에 나서는 과정을 비중있게 다룸으로써 1987년의 숨가빴던 역사의 현장을 다각적으로 담아냈다. 남영동 고문실과 백골단의 청자켓부터 연희의 마이마이와 교도관이 들고다니는 선데이서울에 이르기까지 시대상을 꼼꼼하게 복원해낸 점도 인상적이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길들여진 박처장 역의 김윤석,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사건의 물꼬를 트는 최검사 역의 하정우, 옳은 일에 목숨을 거는 교도관 역의 유해진, 새내기 대학생 연희 역의 김태리 비롯해 박희순(조반장), 이희준(윤기자), 설경구(김정남), 김의성(이부영), 문성근(안기부장) 등은 역사적 사명감에 걸맞는 연기로 영화의 진정성을 도드라지게 표현했다.
우리는 30년 후에 다시 광장에 모였다. 불의에 싸웠던 과거의 기억이 우리를 소환했다. 촛불혁명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2017년 겨울,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열망을 되새겨야할 때다.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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