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리 위협구'에 소리 질렀던 오타니...후속 투구 보고 웃은 한국야구의 '서글픈 현실' [MD도쿄]

[마이데일리 = 도쿄(일본) 유진형 기자] 일본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예선은 사실상 일본 오타니를 위한 무대다.

메이저리거 오타니는 일본의 핵심 선수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만화 같은 선수다. 투수와 타자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는 '이도류'다.

일본은 이번 대회 전부터 위협구와 빈볼, 사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우석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타니는 좋은 타자라 던질 곳이 없다는 뜻으로 "오타니를 맞히겠다"라고 한 말에 발끈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오타니가 한국 투수 공에 맞을 뻔한 일이 벌어졌다. 목 통증으로 일본전에 결장한 고우석은 아니었고 이의리였다.

이의리는 2002년생으로 앞으로 한국 마운드를 책임질 좌완 파이어볼러다. 150km 이상 던지는 투수로 도쿄올림픽 대표팀에서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제구가 불안한 투수며 KBO리그에서 대부분 선발로만 등판한 선발투수로 최적화된 선수다. 기록을 살펴봐도 '선발투수 이의리'와 '구원투수 이의리'는 완전히 다른 투수다.

하지만 이강철 감독은 10일 일본 도쿄 분쿄구의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B조 조별리그 2차전 일본과 맞대결에서 7회말 구원 등판 시켰다. 예상대로 이의리는 제구가 되지 않았고 볼넷만 연속 3개를 내주며 무너졌다.

특히 1사 2.3루 오타니와의 승부 때가 문제였다. 풀카운트 상황에서 더 빠른 공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의리 손을 떠난 공은 오타니의 낭심쪽으로 강하게 들어갔다. 오타니는 '으악'이라는 비명과 함께 엉덩이를 쭉 빼며 겨우 피했다.

화가 난 오타니는 1루로 걸어나가며 이의리를 노려봤고 도쿄돔은 야유로 가득 찼다. 이의리가 던진 공에 오타니가 맞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일촉즉발의 분위기였다.

1루수 박해민이 오타니에게 이의리가 공은 빠르지만 원래 제구가 좋지 않은 투수라며 미안하다는 사인을 보냈지만 오타니는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오타니의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후속 타자를 상대하는 이의리의 제구를 지켜본 뒤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었다.

한국 입장에서는 참 서글픈 미소다. 한국 마운드의 미래라고 평가받는 투수의 투구를 지켜본 일본 대표 선수가 웃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편안함만 느껴졌다. 앞으로 한일전은 계속될 테지만 오늘 같은 치욕적인 패배가 다시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미 일본 선수들은 자신감에 차있다.

[이의리의 몸쪽 위협구에 화를 냈지만 후속 타자를 상대하는 모습을 보고 미소 지은 오타니. 사진 = 도쿄(일본)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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